클래식 콘서트를 찾는 이들을 청중이라 부른다. 주로 음악을 듣는데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1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시간 가량 펼쳐진 '토요 콘서트'를 경기 성남 분당의 영화관 CGV오리에 앉아서 감상한 이들은 청중이 아닌 관객이었다.
콘서트홀에서는 평소 볼 수 없는 포디엄에 선 지휘자의 표정, 협연자의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 연주자들의 얼굴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공연장에 설치된 여러 대의 카메라가 무대 곳곳의 뮤지션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클로즈업, 시시각각 포착하면서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특히, 라이네케의 플루트 협주곡 D장조 Op.283을 협연한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음악분야 플루트 전공자 한여진(11·경기부천 계남초6)의 역동적인 표정 변화를 대형 스크린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예술의전당(사장 고학찬)이 펼치는 '콘텐츠영상화사업-삭 온 스크린(SAC on Screen)의 첫 번째 작품이다. 우수 공연·전시 콘텐츠를 영상물로 제작, 전국에 배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토요 콘서트'의 올해 마지막 무대로 '라스트 심포니 & 콘체트로'라는 부제를 단 이날 공연이 실황 중계됐다.
'토요콘서트'를 수년째 진행하는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김대진 교수(51·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와 그가 이끄는 예술의전당 페스티벌 오케스트라(SFO)가 나섰다. 바리톤 백승훈이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넌 이미 이긴셈이다'를 불렀다. SFO는 교향곡으로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41번 C장조 K.551 '주피터'를 택했다.
예술의전당이 첫 시도한 실황 중계는 나쁘지 않았다. 클래식 음악평론가 장일범(45)씨가 사회를 봐 신뢰감을 더했다.
수년 전부터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영화관 진출사업인 '메트 온 스크린'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카메라는 일반 청중이 접할 기회가 없는 무대 깊숙한 곳은 물론, 백스테이지 풍경까지 보여준다. 주역 뮤지션의 인터뷰도 곁들여진다.
인터미션 동안 정 평론가가 김대진 지휘자와 한여진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김 지휘자는 실황 중계에 대해 "미국에서는 이미 뉴욕에서 LA필하모닉 콘서트를 관람할 수 있는 것에서 보듯 활성화됐다"면서 "바빠서 예술의전당까지 올 수 없는 지방분들이 공연을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밝혔다.
수도권 시민일지라도 늦잠의 유혹이 있는 토요일 오전 11시 예술의전당 콘서트는 다소 부담스럽다. 분당 구미동 CGV오리 인근 주민은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어 오전 9시에는 나와야 시간에 맞출 수 있다. 그러나 이날은 느지막한 오전 10시 이후에 나와 인근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고 극장을 찾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구미동 인근 금곡동에 사는 회사원 이모(31)씨는 "평소 클래식을 좋아해 토요 콘서트를 수차례 찾으려고 했는데 일주일동안 쌓인 피로로 토요일 오전에 서두르지 못했다"면서 "여유롭게 나와 극장에서 콘서트를 즐기니 좋다. 좋아하는 김대진 지휘자의 지휘할 때 표정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다만, 이날 오리CGV의 실황 중계는 예술영화 상영관인 '무비꼴라쥬'에서 진행됐는데 사운드의 풍성함이 부족했다. 각종 음향 장비가 갖춰진 콘서트홀과 비교하면 당연한 것이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송출 과정의 문제인지 인터뷰에서 음향 교섭에 따른 하울링이 일기도 했다.
영국의 거장 사이먼 래틀(58)이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은 2009년부터 온라인 공연실황중계 시스템인 디지털 콘서트홀을 선보이고 있다. 매년 40편이 넘는 주요 공연을 중계한다. 독일뿐 아니라 지금까지 100여개 나라에서 150만명이 디지털 콘서트홀을 방문했다. 과감한 투자와 세계적인 음향회사 소니와 협업 등을 통해 수준 높은 음향을 선보이고 있는데, 배울 지점이 있다.
이날 실황은 예술의전당이 CJ CGV(대표이사 서정)와 업무협약 이후 선보인 첫 협력사업이기도 하다. CGV오리를 비롯해 압구정·대구·서면·광주터미널 등 5개관에서 상영됐다.
경북 안동 문화예술의전당, 전북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남 여수 GS칼텍스예울마루, 경기 연천 수레울아트홀 등 문예회관 4개소까지 합하면, 총 9곳에 동시 중계됐다. 사업 시범 차원에서 무료로 이뤄졌다.
'11시 콘서트'는 내년 3월부터 12월까지 10회에 걸쳐 전국에 본격적으로 실황 중계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삭 온 스크린'의 하나로 전시 '시크릿뮤지엄', 이디트헤르만 안무의 무용 '인투 신 에어(Into Thin Air)',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영상물로 제작돼 배급된다.
'시크릿뮤지엄'은 학생들을 위한 교육용으로 제작, 초·중·고교를 주요 대상으로 배급된다. 22~24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선보이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증발(Into Thin Air)'과 12월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호두까기 인형'은 내년 초 영상물로 제작된다.
영상물 제작 작업은 성급하게 시작했다는 지적이 많다. 배재정 의원(45·민주당)은 지난달 예술의전당 국정감사에서 "영상에 대한 예술의전당의 이해가 부족하다. 실제 콘텐츠를 가진 예술단체와 협의가 불충분하고 예산이 미확보됐다. 저작권에 대한 보상이 제작비를 초과할 우려도 있다"고 짚었다.
배 의원은 "예술의전당 첫 계획은 편당 5000만원의 제작비로 8편, 총 4억원의 예산으로 진행하려고 했으나 예산에 없던 사업으로 진행에 차질이 발생했다"면서 "현재 4편, 2억4000만원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