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주거비·물가 오르며 가계 구매력 '바닥'

#. 수원에 사는 30대 A씨는 외벌이 가구다. 남편이 직장에서 세후 350만 원을 벌어오고 A씨는 전업주부로 2살, 5살 두 딸을 키운다. 맞벌이를 하고 싶지만 어린 아이들을 직접 키우길 원하고, 베이비시터를 써가며 맞벌이를 한다 해도 배보다 배꼽이 클 것 같아 외벌이를 택했다.

하지만 24평 반전세 아파트 보증금을 마련할 때 빌렸던 대출금이 3000만원 가량 남았고, 월세도 만만찮아 생활이 팍팍하기만 하다. 대출금 상환과 이자 60만원, 월세 70만원, 관리비 20만원, 보험료 30만원, 핸드폰 2대와 인터넷비 등 통신비 20만원, 차 유류비 20만원 등 매달 숨만 쉬어도 고정적으로 220만원이 나간다.

남편 용돈으로 한 달에 30만원을 주고 나면 남는 돈은 100만원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 4인가족의 식료품비와 아이들 교육비를 쓰고 나면 화장품 하나, 옷 한 벌 사는 것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등 이벤트가 있을 때는 적자가 나기도 한다. 얼른 돈을 모아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반전세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최근들어 치솟는 물가를 보면 한숨만 나올 분이다.

그야말로 사상 최악의 '소비절벽'이다.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는 서민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슬금슬금 불어나기 시작한 국내 가계부채 규모는 어느새 1300조원까지 늘었고, 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쓸 돈이 없는 서민들이 소비를 줄이면서 국내 내수기업들도 비명을 지른다.

기업들은 직원을 비정규직으로 바꾸거나 고용을 줄이고 소비자가를 올리며 이익을 늘려보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소비위축-고용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깊어지고 있다.

가계부채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상황에서 미국발 기준금리 인상으로 국내 시중금리가 오르며 서민들의 부담은 더 커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제 곡물가, 유가가 오름세를 보이고 작황 부진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유행으로 신선채소와 계란가격 등이 상승하면서 가계의 구매력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고용의 질이 나빠지고 실질 소득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우리 경제의 '빨간불'이다.

통계청 가계 동향에 따르면 물가를 반영한 실질 가계소득은 2015년 3분기 이후 5분기 정체되거나 감소해왔다. 소득이 가장 안정적인 40대 가구 소득 역시 지난해 3분기 처음으로 감소했고, 외벌이 가구 소득은 3분기 연속 감소했다.

한국은행 역시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5%로 하향 조정하면서 민간소비 둔화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소비절벽의 최접점에 서 있는 유통업계에서는 우리 경제가 올해 사상 최악의 소비 빙하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집값, 주식 상승에 따른 자산증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구조조정 등으로 실질 구매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유통기업들이 동남아 등 수출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도 내수시장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년에는 설, 추석 등이 대목이었는데 올해는 그렇지도 않다"며 "소비자들의 구매력 감소와 김영란법 영향 등으로 내수시장에서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계속되는 국내 내수부진과 세계적인 보호무역정책 기조 강화 움직임으로 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며 "한국경제 성장률이 더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가계의 구매력을 높이고 소비심리를 살릴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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