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출금 빼돌린 은행원…대법 "고객 상대 배임죄 아냐"

"은행원, 피해자 사무 아닌 은행 업무 본 것"
"대출금 반환 요구 가능···재산상 손해 없어"


[파이낸셜데일리=김정호 기자] 여신 담당 은행원이 고객 명의 계좌에 입금된 대출금을 몰래 빼냈어도 피해자 사이 관계에서는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해당 행위로 재산상 손해를 본 것은 고객이 아니라 은행이라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고객 대출금 5억여원을 몰래 인출한 전 은행원 정모(47)씨에게 피해자들에 대한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할 것을 주문했다고 7일 밝혔다. 정씨는 다른 법리가 적용돼 다시 재판을 받을 전망이다.


  정씨는 대출금 입금을 위해 피해자들을 대신해 피해자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했다. 이후 해당 통장에 돈이 입금되면 이를 가로채거나 피해자 명의를 이용해 현금카드를 새로 발급하는 수법으로 돈을 빼돌렸다.


  정씨가 2014년 5월부터 2015년 5월까지 모두 38회에 걸쳐 빼돌린 돈은 5억1000여만원에 달했다. 정씨는 이를 자신의 빚을 갚는 용도 등으로 사용했다.


  이에 대해 원심은 "정씨는 피해자들로부터 대출신청을 받은 뒤 대출금이 입금된 통장을 피해자들에게 즉시 전달하는 한편 그 통장에서 대출금을 임의로 인출하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정씨가 의무를 위반해 돈을 빼돌린 만큼 피해자들에 대한 업무상 배임죄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은행이 발행하는 예금계좌 통장을 예금주에게 내주는 것은 은행의 업무에 속하지 피해자들의 사무로 볼 수 없다"며 "정씨가 피해자들의 재산관리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해자들에 대한 관계에서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정씨가 피해자들 명의 예금계좌에 입금된 대출금을 권한 없이 인출한 이상 피해자들의 예금채권은 소멸하지 않는다"며 "피해자들은 여전히 은행에 그 반환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들에게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심의 판단에는 업무상배임죄에서 정한 타인의 사무 및 손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할 것을 주문했다.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