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文대통령, 지지도 지속 여부가 재벌 개혁의 성공여부 좌우하게 될 것


[파이낸셜데일리=김유미 기자] 문재인 정부가 촛불 민심의 지지를 업고 집권한 재벌 개혁의 시동을 걸었지만 향후 한국 경제의 향방과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의 지속 여부가 재벌 개혁의 성공여부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는 외신의 분석이 제기됐다. 


  만일 재벌 개혁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가 성장을 지속한다면 문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는 이어지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브레이크가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한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지면 재벌들이 문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가 한국경제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공포 프로파겐다"를 앞세워 반격을 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파이낼셜타임스(FT)는 13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의 까다로운 미션 ‘대한민국 주식회사 길들이기(President Moon’s tricky mission to tame Korea Inc)’”라는 제하의 분석 기사를 통해 지난 5월 취임한 문 대통령이 한국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재벌들을 개혁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몇 달 전까지 연일 수십만 명의 시민을 거리로 불러냈던 촛불 민심은 이제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핵 위기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 아래서도 몇몇 강력한 재벌의 지배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또 FT는  “이는 단지 국가 통치나 기업의 책임 문제 뿐 아니라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전망과 관련된 문제다. 한국 경제는 삼성과 현대, 롯데 등과 같은 대기업들의 비대한 몸집(hulking presence) 으로 인해 많은 문제점을 노정해 왔다. 한국의 5대 대기업의 시가 총액은 코스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현재 상황을 전했다.


  FT는 과연 문재인 정부의 경제개혁이 성공할 것인지 의문을 나타냈다. 아울러 문 정부가 제시하는 대안이 한국 국민의 열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제브라 투자자문의 최고경영자인 브루스 리는 FT와의 인터뷰에서 “그건 균형의 문제다. 만일 재벌개혁이 경제 쇠락을 초래한다면 정부는 이를 중단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경제가 성장을 지속한다면 개혁은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한국의 경제 개혁은 단명으로 끝났다. FT는 그러나 한국 국민은 지난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가 경제 개혁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8월 25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공여죄 등으로 5년 실형을 선고 받았다.


  FT는 한국의 재벌들이 문어발식 경영을 하는 점을 꼬집었다. 한 대기업의 경우 제약회사에서 중공업까지 62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FT는 “삼성은 한국 경제를 지키는 방어벽이다. 삼성의 16개 회사들은 코스피의 30% 가까이 차지한다. 이로 인해 이 부회장은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다. 이제 많은 전문가는 이 부회장에 대한 실형이 항소심에서 뒤집히지만 않는다면 대기업과 정치, 법조계 간 정경유착을 끊는 전쟁의 총성이 울린 것으로 받아 들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이야말로 근본적인 재벌개혁을 할 시점이다. 한국민은 이제 재벌로 인해 불거지는 문제들을 이해하고 있다. 시민들은 이제 정치 및 경제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갈구하고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라고 밝혔다.


  기업경영 문제 전문가인 김우찬 고려대학 교수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지금 매우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그것(이 부회장에 대한 실형선고)은 업계에 매우 중요한 신호를 던지고 있다. 기업들이 부패한 정치와 유착하는 과거 관행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과거에 한국의 대기업 경영자들은 집행유예 혹은 대통령의 특별 사면을 받고는 했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는 그러한 관행을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김 교수는 “만일 항소심에서도 (이 부회장에 대한) 선고가 유지된다면, 이는 재벌 제도를 개혁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삼성 개혁의 기회도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FT는 “한국의 재벌들은 국가와 긴밀하게 유착돼 있다. 1960~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폐허 위에서 기업들로 하여금 국가재건을 돕도록 했다”면서 “국가가 발전할수록 정경유착 관계도 커져만 갔다. 정치세력과 기업 모두 제도적인 영향력 행사와 특별대우로 이득을 취했다”라고 전했다.

 

FT는 이어 “한국 재벌들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대가로 정부 계약을 쉽게 따내고 외국 기업들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대기업들의 재력이 강해지면서 그들의 영향력은 법조계와 언론계로 확장됐다. 신문들은 재벌 광고에 재정적으로 매여 있다. 편집 책임자들은 기업의 비리를 파헤치거나 비판하는 일을 주저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대기업들은 또한 법관들의 향후 취업 기회를 흔들어 보이면서 사법부의 환심을 사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업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한국은 이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는 선진 경제의 일원이다. FT는 이 같은 기업 환경의 변화로 인해 이제까지 한국의 정경유착 모델이 퇴색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들은 이 부회장과 박 대통령 간 정실주의와 밀실거래를 비난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것이다.


  FT는 한국민들의 이 같은 불만의 기저에는 실업문제가 깔려 있다고 풀이했다.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9%에 달한다. 경제 성장도 지지부진하다. 이런 상황 때문에 과연 부유한 대기업들이 이제까지의 특별 대우를 여전히 받아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들 역시 대기업들의 공급망 및 가격 통제로 인해 질식할 지경이라면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FT는 또 “대중적 불만의 많은 부분은 대기업들의 세금 회피와 부패 혐의로 기소된 기업가들에 대한 대통령 사면 등 공공연하고 터무니없는 관행으로부터 표출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FT는 이어 재벌 개혁의 보다 복잡한 문제는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주식 보유 문제를 푸는 것이라고 전했다. 재벌들이 주식 순환출자를 통해 기업에 조종하고 결국 소액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재벌 개혁 운동가들은  재벌 감사에 대한 부실도 비난하고 있다. FT는 한국 기업의 투명성 부족이 부분적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전했다. 자사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기업 간 내부 거래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FT는 “대부분 전문가들은 재벌 개혁의 성공 여부는 문 대통령이 한국 경제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 결심하는 데 달려 있다”라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부패한 기업가들에 대한 대통령 사면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FT는 하지만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풀어주라는 압박을 강하게 받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 기업가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재벌 개혁은 아주 지난한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이번 정부가 수년 안에 그런 일을 해 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재벌 개혁이 보복이 아니라 투명성에 관한 문제임을 재벌들에게 확신시키는 막중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재벌 개혁 임무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손에 맡겼다. 김 위원장은 이미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언론 인터뷰에서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재벌 그룹에 대해 "오는 12월까지 긍정적 변화의 모습이나 개혁 의지를 보여주지 않을 경우 구조적 처방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그룹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12월 정기국회 법안 심사 때까지가 1차 데드라인"이라고 했다.


  FT는 경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정책들이 실업문제 해소에는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인 경제 성장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고 전망했다. 또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질 경우 재벌들의 반격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박상인 교수는 “재벌들의 최대 무기는 ‘공포 프로파겐다’이다. 그들은 재벌개혁이 한국 경제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찬 교수는 “그들은 (힘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다. 그러나 내 견해로는 재벌 시스템은 한 세대 이상 더 지속하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대를 잇는 승계 제도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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