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친고죄 폐지됐는데 왜?···한샘 성폭행 수사의 속사정

경찰, 피해자 고소 취하시 가해자 전과자 만들기 부담
합의하고 수사 협조 안 하면 범죄 입증 자체 힘들어져
"한샘 피해자 취하 배경에 강제성 등 심층 판단했어야"
"강요나 협박으로 취하한 사실 밝혀지면 재고소 가능"


[파이낸셜데일리=김정호 기자] 가구업체 한샘에서 신입 여직원 A씨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합의'와 '고소 취하'에 따라 가해자에 대한 형사 처벌이 유야무야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3년 6월 '친고죄'가 폐지됐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더라도 가해자는 그와 상관없이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 후 고소를 취하하면 경찰과 검찰 역시 수사 흐름을 바꿔 빠르게 종결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경찰과 한샘 등에 따르면 20대 여성 A씨는 한샘에 입사한 후 지난 1월 회식이 끝나고 교육담당자 B씨에게 모텔에서 강제로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A씨는 가해자 B씨가 고소 취하를 요구하며 지속적으로 연락하는가 하면 집 앞으로 찾아와 "이걸 칼로 확"이라고 위협하는 탓에 지난 2월21일 고소를 취하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고소가 취하된 이후 추가 수사를 위해 A씨에게 3~4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자 수사를 종결하고 지난 3월13일 B씨를 증거불충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도 해당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이를 두고 온라인사이트에서 일부 네티즌들은 검경의 부실 수사 가능성을 제기했다. 여기에 A씨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고소 취하 후 담당 형사에게 연락이 와 '가해자 측이 (A씨가) 고소를 취하해줄 것 같으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수사도 해 놓은 게 없다"고 밝히면서 부실 수사를 둘러싼 진실 공방은 더욱 거세졌다.


  전문가들은 친고죄가 폐지됐더라도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 후 고소를 취하하면 수사기관이 '좋은 방향'으로 흐름을 끌고 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피해자의 입장 표명이 있는데 계속 수사를 진행하는 게 경찰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면 경찰도 심각하게 사건을 다뤄봐야 일만 많아지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며 "친고죄면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해주세요'라고 얘기해야 하는데 고소가 취하됐으면 더 이상 그게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경찰이 스스로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제도로 개선할 게 아니라 일선 경찰관들의 관행이나 의식의 문제"라며 "여성, 아동, 정신장애자, 노인 등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엄격해야 한다는 경찰의 의식 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현호 용인대 경찰학과 교수도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 표명이 있는데 가해자를 전과자로 만드는 게 부담스러울 수는 있다"며 "친고죄가 폐지됐다고 하더라도 수사 진행 판단은 경찰이 하기 때문에 쉽게 그런(불기소 처분 등) 쪽으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수사 중간에 고소가 취하될 경우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시선도 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친고죄가 폐지됐어도 처벌을 하려면 범죄 증명이 필요한데, 피해자가 합의해버리고 구체적인 증거가 드러나지 않으면 입증 책임은 결국 국가가 져야 한다"며 "객관적인 폐쇄회로(CC)TV 증거나 제3자의 목격 증언이 있지 않은 이상 가해자의 강제성을 밝히기 힘들다. 경찰 입장에서는 범죄 입증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95% 이상 가해자라는 확신이 없으면 법원도 무죄를 선고할 가능성이 있다"며 "조사하는 입장에서는 특별한 증거가 있지 않은 이상 피해자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으면 조사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샘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안일한 의식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경찰이 A씨가 고소를 취하한 배경과 속내를 읽지 않고 눈에 보이는 '합의'만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는 관측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이 A씨가 고소를 취하한 것에 대해 강제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실수"라며 "A씨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합의를 한 게 아닌데 경찰이 그걸 파악을 못 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어 "판단을 좀 더 심층적으로 했어야 한다"며 "일을 편하게 끝내려고만 하면 이런 실수를 하게 된다"고 충고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해 여성은 신입사원이고 가해자는 회사 상사다.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상하 관계"라면서 "A씨 입장에서는 대처가 미숙할 수밖에 없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남성과 여성'으로 이해했을 뿐 고소가 취하된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재수사가 들어가기 위해서는 B씨나 회사의 강압으로 고소가 취하됐는지가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증거나 진술이 확보돼야 재수사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A씨 변호사는 한샘 측 인사팀장이 강압적으로 A씨를 회유하고 경찰에 제출할 진술서의 가이드라인까지 잡아준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 변호사는 이를 토대로 재고소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재고소를 하기 위해서는 A씨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증거나 진술이 확보돼야 한다"며 "회사 상사의 협박과 강요 때문에 고소가 취하된 사실이 밝혀지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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