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낙태죄 논란]"일관둬라" "월급못줘"…아이키울 권리도 보장해야

 

"여성 자기결정권, 아이 생명권 고르는 식 접근은 지양해야"
  비혼모들 "낙태는 죄라면서 혼자 아이 키울 환경은 안 돼"


[파이낸셜데일리=김정호 기자] "낙태가 죄라면 아이를 낳아도 걱정 없는 모든 환경을 만들어 줘야죠."


  청와대가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해 "실태조사를 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낙태죄를 둔 사회 각계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한편 태아의 생명권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하다.


  일각에선 찬반 구도와 별개로 아이를 낳아 키울 만한 사회적 환경에 대한 논의를 함께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성들이 차별과 편견에 떠밀리듯 낙태를 택하는 경우는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만난 미혼모협회 '인트리'의 최형숙(45) 대표는 "여성들에게 아이를 지우거나 입양 보내는 결정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가슴에 묻고 가는 결정"이라며 "낙태죄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아이의 생명권 중 고르는 식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2013년부터 미혼모를 위한 비영리단체를 이끌어오며 임신과 육아를 고민하는 많은 여성과 만났다. 그는 "낙태한 여성은 죄인이라면서 아이를 걱정 없이 낳아 키울 만한 환경은 만들어져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함께 만난 인트리 회원 조가영(33)씨와 최소미(29)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임신부터 육아까지 여성만 감당해야 할 몫이 지나치게 크다고 입을 모았다.


  조씨는 22개월 난 딸 해솔이를, 최씨는 7살난 아들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비혼모들이다.  혼자 아이를 키우겠다고 선택한 동시에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됐다.


  하지만 사회에서 불평등한 대우에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며 사회생활을 하는 엄마들은 한 번쯤 겪었을 차별이기도 했다.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일하던 조씨는 임신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직장을 잃었다. 그는 "원장이 바로 '같이 일할 수 없겠다'고 하더라. 다른 교사들한테도 출산휴가만 가고 육아휴직은 가지 말라는 식인 사람이었다"며 "지금이라도 다른 엄마들을 위해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 쇼핑몰에서 웹디자이너로 1년 6개월째 근무 중인 최씨도 "취직 면접을 보면 '혼자 아이를 키우는데 맡길 곳은 있냐'는 질문이 꼭 나왔다"며 "없다고 말했던 회사는 다 탈락했다"고 떠올렸다.


  한 회사에선 최씨를 합격시킨 문제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날 뽑아준 상사에게 다른 상사가 '대학 안 나오고 아이 혼자 키우지 않냐'며 반대하더니 계속 일하게 하려면 월급 50만원 깎으라더라. 결국 3일만에 관뒀다"며 "지금 회사는 편견 없이 일만 잘하면 되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배려해준다.  지금까지 최장 기간 근무한 회사"라고 전했다.


  육아를 위한 사회적 시스템도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조씨는 "아이 키우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어머니 지금 당장 해드릴 수 있는게 없어요'다"라고 토로했다.


  "쓰러질 정도로 아파서 응급실에 갔는데 아이 돌볼 사람 데려오라고 재촉하더라. 보호자가 있었다면 데려갔겠지. 아이돌봄 서비스(돌보미가 직접 방문해 아이를 돌봐주는 정부서비스)도 그렇다. 너무 아파서 돌보미를 보내달랬더니 언제 또 아플 줄 알고 대기하라고 했다. 정 힘들면 가족을 부르라고 했다. 그게 안되니 국가기관에 도움 청하는건데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의문이다."


  최씨도 "기초 생활보장수급을 받지 않아야 한부모 가정 지원법에서 월 17만원 정도 양육비를 받는다. 또 아기가 어릴 때 어린이집을 보내면 일을 해야 하는 조건부 수급자로 바뀐다"며 "비현실적이다. 어린이집은 오후 3~4시면 마치는데 그 시간에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은 없다"고 꼬집었다.


  "양육비 문제에서 아이 아빠들은 책임에서 너무 벗어나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조씨는 "아이 아빠가 양육비를 안 주면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요청할 수 있는데 절차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강제성이 사실상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결국 낙태 문제에 여성의 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씨는 "미혼모는 어렵고 힘들다는 인식이 많지만 그 누구보다 활기차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엄마가 되는 걸 빠르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닌 사람도 있다"며 "결국 여성이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에 따라 선택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최씨도 "(여성들의 낙태 고민에) 누구도 쉽게 말할 수는 없다"며 "결국 여성 자기 자신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김형범 정책 담당은 "모든 어머니들이 자신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프랑스, 스웨덴 등 선진국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책임져준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한국에서는 미혼모들에만 책임을 묻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에서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차별 방지 교육으로 인식 변화에 나서고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한 이들에 대한 지원 강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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