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당국 "지배구조 문제" vs 금융권 "관치"…배경에 관심집중


[파이낸셜데일리=김유미 기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에 이어 최흥식 금융감독원장까지 금융지주회사 최고경영자(CEO)의 '셀프 연임' 등 지배구조 문제를 비판하고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을 제정하고 CEO 경영승계 프로그램 등을 각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내부규범에 반영토록 했지만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CEO 선임 과정에 특별한 잡음이 없는 상황에서 당국이 유독 승계 절차만을 문제삼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민간 금융지주사 CEO 인선에 관여하려는 '신(新) 관치'라는 지적까지 일고 있어 논란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회추위에 현 회장 들어가 연임"…금융사 지배구조 '맹비판'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 문제가 도마에 오른 것은 지난달 29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최 위원장은 "그동안 금융지주사는 지배구조 특성상 특정한 대주주가 없어 CEO가 본인의 연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어왔다"며 "CEO가 가까운 분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연임에 유리하도록 하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승계 작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CEO의 책무다. 그런데 자신과 경쟁할 수 있는 사람을 인사 조치해 대안이 없다는 식으로 만들어놓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사실이라면 CEO로서 중대한 책무를 유기하는 것"이라며 '셀프 연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두고 최근 연임에 성공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3연임에 도전하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최 위원장의 '작심발언'은 이달 11일에도 이어졌다. 그는 "대주주가 없다보니 현직이 계속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그런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특정인 타깃과 관련해서는 선을 그었다.


최흥식 금감원장도 이러한 시각에 힘을 보탰다. 최 원장은 지난 13일 "전반적으로 회장 후보 추천 구성에 있어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한 점이 발견됐다"며 "경영진이 과도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물론 CEO 승계 프로그램도 형식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잇따라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를 비판하고 나선 것은 관련 제도는 갖춰져 있지만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지난해 8월 CEO 선임의 투명성 등을 담은 지배구조법이 시행됐지만 충실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 원장은 "회장추천위원회(회추위)에 현직 회장이 들어가서 연임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라며 "상식적으로 현직이 연임 예정일 경우 회추위에서 배제된다. 그런데 이를 어느 지주사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최근 금감원이 하나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에 내린 지배구조 관련 경영유의 제재 조치에서도 드러난다.


금감원에 따르면 하나금융의 경우 현 회장은 원칙적으로 CEO 후보군에 포함돼 있음에도 회추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반면, 일부 사외이사는 회추위에서 배제됐다.


KB금융도 잠재적인 후보군인 이사 등이 경영승계절차와 후보군 선정을 관장하는 상시지배구조위원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등 선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또 내규인 '경영승계규정'에 따라 경영진의 계열사간 이동, 계열사간 직무 전환, 그룹 경영관리위원회 활동 등을 통해 회장 후보자군을 육성하도록 되어 있는데도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객관성이 확보돼야 할 사외이사 선임 기준도 명확하지 않았다.


고동원 성균관대 교수는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 등 제도는 잘 갖춰져 있지만 실무적인 부분이 문제"라며 "CEO가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데 있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행사하다보니 사외이사가 된 사람들도 CEO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CEO 선임 과정에서 여전히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당국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예가 BNK금융지주다. BNK금융은 지난 8월 성세환 전 회장이 주가조종 혐의로 사퇴함에 따라 차기 회장 인선을 진행했지만 후보군을 놓고 '코드 인사', '적폐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KB금융 역시 최근 윤종규 회장 연임 과정에서 노조가 윤 회장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하면서 경찰이 KB금융 본사를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노사가 진행한 온라인 찬반 설문조사에 회사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지배구조 리스크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며 "이를 다시 점검해 금융지주가 건전한 지배구조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이 금융당국이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배구조 문제만은 아닐 것"…'의구심'에서 '관치' 논란까지

 금융권의 시각은 다르다. 금융당국이 지배구조 중에서도 '이사회 구성'과 '경영승계 절차' 만을 집중적으로 문제삼은 것을 놓고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


금융위에 이어 금감원 수장이 지주사 회장의 '셀프 연임'에 대한 비판을 잇따라 제기한 데 이어 금감원이 KB금융과 하나금융을 꼭 집어 경영승계 절차 등과 관련해 '경영유의' 제재를 가한게 단순히 지배구조 개선 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는 관점이다. 시기적으로 회장 선임을 앞두고 지주내 심각한 갈등이 터졌다거나, 법적으로 문제가 생겨 당국이 나서야 하는 상황도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더욱이 금융지주사의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는 금융위의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지배구조법에 따른 내부 규범에 맞춰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법 개정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감원이 '후계자 양성프로그램 마련'이라든지, '사외이사 평가 절차' 등 세밀한 경영 내부사항까지 지적하고 나선 것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관치 논란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기관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당국이 개선을 요구하는게 책무이긴 하지만, 시기적으로 봤을 때 다른 의도가 있지 않겠냐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라고 말했다. 당국이 우회적으로 지주사를 압박해 회장 인선에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당국이 단순히 금융권 지배구조 문제를 손 봐 회장 인선 과정을 공정하게 만드는게 목적이라면, 굳이 정책 금융기관은 제쳐두고 민간 금융기관부터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최 원장은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에 대해 문제 삼으며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을 견제하고, 후보를 평가하는 프로세스를 가져야 하는데 견제 역할이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책은행의 사외이사 제도에 대해서도 늘 같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인데도 말이다.


물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의 행장 선임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한 후보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이긴 하다. 그러나 투명하지 못한 선임 절차 때문에 항상 '낙하산 논란'에 휘말리곤 한다. 임원의 임명 절차와 기준 등에 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법률 개정안들이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하고 발목이 묶여있는 상황이다.


전례도 무시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역대 정부가 바뀔 때 마다 금융당국 수장 교체가 이뤄지면 민간 금융기관의 CEO들은 순차적으로 소위 '물갈이'됐다. 그때에도 당국은 금융지배 구조에 먼저 '메스'를 들이댔다. 과거 '4대 MB맨'으로 불리던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과 어윤대 KB금융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등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줄줄이 물러난 바 있다.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 박사는 "우리나라 금융지주사는 확실한 주인이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경영자 마음대로 개입할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라며 "하지만 당국도 그동안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금융권으로부터 관치의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에도 관치는 존재하지만 당국이 정치적 논리가 아닌 공정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금융사가 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분위기"라며 "이번에 당국이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선례를 남겨 새로운 관행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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