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황창규 KT 회장 영장 기각… 검·경 수사권 조정 앞두고 신경전

검찰 "정치자금 수수한 의원 측 조사도 필요해"
경찰 "회삿돈으로 후원금 기부한 자체가 위법"
수사권 조정 국회 협조 절실한 경찰 부담 가중
'불구속 수사' 지휘 해석 놓고도 양측 입장 충돌


[파이낸셜데일리=강철규 기자] 검찰이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 황창규 KT 회장(65) 등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자금을 받은 정치권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수사권 조정안 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검·경 갈등이 이 사건을 통해 표출된 것이 아니냐고 관측한다. 경찰 내부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는 탄식도 나온다.


  수사권 조정 정부안에는 검찰만 가지고 있었던 수사종결권이 경찰에게도 주어지는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안이 나오면 국회 논의 과정을 넘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경찰에 정치권 수사를 주문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20일 검찰과 경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는 황 회장을 비롯한 전·현직 임직원 4명에 대해 정치자금법 혐의로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반려하고 보강 수사를 하도록 지휘했다.


  앞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상품권 깡'을 통해 조성한 현금 4억4190만원을 19.20대 국회의원 99명의 정치후원회 계좌에 입금한 KT 관계자 7명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황 회장을 비롯한 4명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법인이나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고,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검찰은 "공모 여부에 대해 다툼이 있고 돈을 준 공여자와 돈을 받은 수수자가 있는 정치자금수수 범죄의 본질 상 구속할 만한 수준의 혐의 소명을 위해서는 수수자 측 조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금품을 수수한 정치인이나 보좌진 등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은 만큼 이 부분에 대한 수사를 보강하라는 게 검찰의 수사 지휘 내용이다.


  그러나 상품권 깡을 통해 만들어진 자금이 국회의원에게 갔다는 점이 명확한데도 수수자 수사가 더 필요하다는 검찰의 지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게 경찰의 입장이다.


  KT 임직원이 회삿돈으로 정치 후원금을 냈는지가 쟁점인 사안에서 돈을 받은 사람이 횡령한 돈임을 알고 받았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단체 자금임을 알고 받았는지, 모르고 받았는지가 국회의원이나 보좌관 입장에서 볼 땐 굉장히 중요한 팩트지만 돈을 준 KT의 범죄사실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경찰에 '황 회장 등을 불구속 수사하라'는 지시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검찰은 "현 단계에서 구속할 만큼 수사가 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영장을 기각한 것이지 보강수사 후 혐의가 소명되더라도 영장 재신청을 하지 말고 불구속 송치하라는 취지의 지휘를 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수사지휘서에 '불구속'이라는 단어를 넣는 것은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는데 검찰의 변명이 궁색하다는 게 경찰 측 중론이다.


  경찰의 숙원 사업인 수사권 조정 문제를 앞두고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연관된 조사를 지시한 점도 의미심장하다. 수사권 조정안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를 통과해야 하기에 경찰로서는 국회 협조가 절실하다.


  경찰에 따르면 KT의 자금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정치인 99명은 여·야에 고르게 분포돼 있다. 경찰은 단체의 후원금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돈을 받은 의원실 관계자 10여명을 우선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알았다', '고맙다' 혹은 거부 의사를 표시한 10여건의 문자 메시지를 확보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수수혐의자가 특정 정당에 편중됐다면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여야에 골고루 분포돼 있다"며 "이번 기회에 검찰이 공식적으로 정치권 조사 명분까지 만들어 준 것"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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