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공정위, 4조원대 철근값 담합 제강사들…과징금 1194억·檢고발

20개월간 팀장급 모임서 12차례 '할인폭' 합의
'위법 경미·조사 협조' YK스틸 檢고발 제외
'담합 증거 불명확' 한국제강 제재대상서 빠져
공정위 "2011~2014년 묵시적 담합 不인정"
1조원대 예상 빗나가…'솜방망이 처벌' 논란도


[파이낸셜데일리=김유미 기자] 국내 6개 제강사들이 4조원대 규모의 철근을 공급하면서 가격 담합한 사실이 발각돼 거액의 과징금을 물고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제철·동국제강·한국철강·YK스틸·환영철강·대한제강 등 6개 제강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1194억원을 부과한다고 9일 밝혔다.


공정위는 또 YK스틸을 제외한 5개사를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이들 6개사는 2015년 5월부터 2016년 12월 사이 총 12차례에 걸쳐 월별 직판향 또는 유통향 물량의 할인폭을 축소·제한하는 방식으로 건설용 철근 판매가격을 담합한 혐의를 받는다.


과거 제강사들이 t당 철근 가격을 인상하는 수법으로 담합하다 적발된 사례는 있었지만 월별로 적용할 할인폭을 합의해 가격 지지 효과를 얻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담합 어떻게 이뤄졌나…팀장급 모임체서 할인폭 결정

 철근 시장은 크게 제강사가 대형건설사에 직접 판매(직판향·30%)하거나 유통회사를 거쳐 중소건설사에 판매(유통향·60%)하는 '민수 시장'(90%)과 정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에 판매하는 '관수 시장'(10%)으로 나뉜다.


민수 시장에서의 철근 가격은 제강사 대표격인 현대제철과 건설사 협의체인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건자회) 간 협상을 거쳐 분기(3개월)마다 결정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인 '기준가격'에 각 제강사의 서로 다른 할인폭을 적용해 형성된다. 판매 경쟁이 붙거나 수요처(건설사)의 협상력에 의해 할인폭을 높일수록 철근 시세가 낮아져 제강사들의 매출이 줄어드는 구조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6개사는 당시 건설 경기의 회복세에도 중국산 철근 수입량 증가와 철근 생산의 원자재격인 고철의 가격 하락에 따른 수요처의 가격 인상 반대로 국내 철근 값이 좀체 회복되지 않자 꾀를 냈다.


영업팀장급 모임을 만들고는 철근 값이 일정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할인폭을 축소·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20개월 동안 한국철강과 환영철강의 소재지인 서울 마포구 인근 카페와 식당에서 30여 차례 모여 1시간~1시간 30분 가량 논의 끝에 총 12차례 1만~9만5000원의 구체적인 할인폭을 정했다. 할인폭의 추가 합의가 없을 경우 전월의 할인폭을 유지·적용했다.


고병희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각 사별로 할인폭의 축소 정도는 동일하지 않지만 합의가 있는 달은 전달보다 할인폭이 축소돼 실거래가 형성에 영향을 줬다. 합의가 없던 시기(월)도 이미 합의된 할인폭을 적용된 기간으로 부당한 공동행위로 인정된다"고 말했다.


고 국장은 다만 "담합을 누가 주도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현대제철이 업계 대표로 건자회와 기준가격을 협상하는 관행이 있어 오해살 수는 있지만 이번 담합 건은 제강사들 간 내부 논의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예상 빗겨간 제재 수위 왜?…담합기간·가담업체 수↓

공정위는 당초 한국제강도 담합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조사를 벌였지만 증거 부족 이유로 이번 제재 대상에서는 빠졌다.


YK스틸은 위법 정도가 경미하고 조사에 적극 협조한 점을 참작해 검찰 고발 대상에서 제외했다. 반면 현대제철은 증거자료를 삭제하다가 적발돼 지난해 4월 총 3억1200만원의 과태료를 물었다.


고 국장은 "한국제강의 팀장급 모임 참석 여부와 합의 결과의 간접 전달 증거가 입증되지 않아 최종적으로 심의·의결 대상에서 빠졌다"며 "YK스틸은 위법 행위의 경중과 조사 협조의 정도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됐다. (특히) 조사 과정에서 진술과 관련자료 제공으로 담합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법인 외에 대표자나 담합 행위를 모의한 팀장들에 대한 고발이 이뤄지지 않은 데에는 "팀장급 모임에 참여했던 일부 실무자에 대한 사무처의 개인 고발이 있었다"면서도 "모임에서 정한 할인폭이 실제 거래시장에서는 거래상대방의 협상력 등에 의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특성이 있는데다 가격을 픽싱(fixing·고정)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협상력을 키우자는 측면이 강해 전체적으로는 느슨한 담합이었다는 위원회 측 판단에 따라 계류됐다"고 했다. 


공정위는 또 한국제강을 포함한 7개사가 2011~2014년 사이 할인폭이 아닌 '기준가격'에 대한 묵시적 담합을 했을 가능성을 두고도 조사했지만 입증해내지 못했다.


고 국장은 "2011~2014년 기준가에 대한 묵시적 합의가 있었을 것이라 의심은 했지만 명확한 증거를 찾기가 어려웠다"면서 "판례상 사업자 간 외형상 일치는 보이지만 위법행위로 볼 수없다며 위원회 측이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제강사들의 담합 기간이 짧아지고 가담업체 1개사가 제외되면서 역대 최대 과징금이었던 퀄컴 과징금(1조311억원)을 뛰어넘을 것이란 시장 예상은 빗나갔다.


하지만 '솜방망이 처벌' 논란도 나온다. 과징금은 담합기간 동안 제강사들이 올린 매출의 최대 10%까지 매길수 있다.


7개 제강사가 20개월 동안 거둬들인 매출 규모는 8조원 가량이다. 이중 담합 행위 건에 대한 매출액은 약 4조원이다.


공정위는 2.985%의 부과율만 매겨 총 119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업체별 과징금은 현대제철 417억6500만원, 동국제강 302억300만원, 한국철강 175억1900만원, YK스틸 113억2100만원, 환영철강 113억1700만원, 대한제강 73억2500만원이다.


철근은 토목·건축 분야의 대표적 건설자재로, 건설자재 구매액의 20~25%를 차지한다.


담합에 참여한 6개 제강사의 국내 철근 공급량 기준 시장점유율은 81.5%에 달한다. 철근값 담합은 건설비 상승 등 전·후방 연관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고 국장은 "담합 기간이 짧아져 당초 시장이 예측했던 것보다 적다"면서도 "과징금은 법원에서 다퉈질 사안으로 추후 변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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