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한국은행 "돈 풀렸어도, 경제효과 약해"…유동성 함정 경계

민간신용 비율 빠른 상승세, 스웨덴 이어 두번째로 높아
"실물경제 미치는 긍정효과 약화, 미시적 정책노력 필요"
한은 "금리인하, 민간신용 증대시키는 파급경로 중 하나"


[파이낸셜데일리=송지수 기자] 가계와 기업 등 민간신용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시중 유동성이 확대됐지만,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과거보다 약해졌다는 한국은행의 진단이 나왔다.


시중에 돈이 넘쳐 흘러도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로 이어지지 않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대한 경계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12일 한은의 '통화신용정책보고서(2020년 3월)'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민간신용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시중 유동성 상승세도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신용은 가계와 기업의 대출금, 정부융자, 채권 등을 합한 것이다. 지난해 4분기 민간신용 증가율은 전년동기대비 6.1%로 2년 전인 2017년 4분기(5.6%)보다 가팔라졌다.


시중 통화량을 나타내는 광의통화(M2) 증가율도 같은 기간 4.7%에서 7.9%로 확대됐다. 단기자금 지표인 M1(협의통화) 증가율도 6.9%에서 9.6%로 높아졌다.


민간신용은 지난 2018년 1분기 이후 확장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2000년대 들어 4번째 확장기다.


민간신용 비율 상승세는 주요국에 비해서도 매우 빠른 편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 이후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 상승폭은 13.1%포인트로 금융위기 이후 8년간 상승폭(8.4%포인트)을 크게 웃돌았다. 국제금융협회(IIF) 조사대상 52개국 중에서는 스웨덴에 이어 2번째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


반면 통화유통속도는 금융위기 이후 빠르게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만큼 돈이 도는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민간신용 유통속도도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기업과 가계의 신용증가가 투자나 소비로 이어지는 파급효과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축소된 것으로 보여진다는게 한은의 분석이다.


한은은 "기업신용의 투자로의 파급효과가 뚜렷하지 않고, 가계신용도 위기 이후 소비에 대한 파급효과 크기와 통계적 유의성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기업신용의 경우 생산유발효과가 낮은 부동산 부문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경제 불확실성으로 시설자금보다는 운전자금 위주로 대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주택관련 대출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계신용 역시 경제 파급경로가 불확실한 것으로 분석됐다. 가계신용 증가와 집값 상승간 인과관계는 뚜렷하게 나타났지만, 집값 상승 등 자산가치 증가가 소비를 늘리는 '부의 효과'는 통계적 유의성이 낮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2018년 이후 민간신용 비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시중 유동성 확대 등을 통해 금융상황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실물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종전에 비해 약화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시중자금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원활하게 유입되도록 유도하는 미시적 정책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시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고조되고 있는 금리인하론에 신중한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도 풀이된다.


금리를 조정하는 한은의 통화정책은 거시경제정책 수단 중 하나다. 이상형 통화정책국장은 "금리인하는 경제 전체의 자금조달 비용 하락을 통해 민간신용을 증대시키는 통화정책의 주요 파급경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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