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전세금을 제때 돌려주지 않았다며 10년 동안 살아온 전셋집을 강제경매에 넘긴 세입자의 행위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구지법 민사12단독 서영애 판사는 집주인 A씨가 전 세입자 B씨를 상대로 "강제경매신청은 부당하다"며 낸 청구이의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B씨가 10여 년 동안 주택을 점유하고 사용하면서 집주인인 A씨에게 보증금 반환에 대한 아무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며 "A씨와 B씨 간에 계속해서 주택을 사용, 수익하기로 하는 묵시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집주인의 보증금 반환 의무와 세입자의 목적물 인도의무는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다"며 "B씨의 신청으로 인한 강제집행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B씨는 2002년 3월 집주인 A씨가 소유한 20평대 주택에 보증금 3200만원을 내고 2년 동안 살기로 하는 계약을 맺었다. B씨는 이후 2004년 계약기간이 만료되자 A씨를 상대로 입주 당시 맡긴 보증금 3200만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당시 사건을 맡은 법원은 같은 해 10월까지 A씨가 B씨에게 보증금 3200만원을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의 화해권고결정을 내렸다. 법원의 결정에는 A씨가 정해진 기간 내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연 20%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A씨는 그러나 이 기간 동안 결국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고, B씨 역시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A씨 소유 주택을 사용했다.
A씨는 이처럼 B씨가 계속해서 주택을 사용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10년이 흐른 지난해 4월에서야 B씨에게 보증금 3200만원을 반환했다. B씨는 그러나 A씨가 10년 동안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며 이에 따라 연 20%의 이율을 적용해 총 6112만원의 지연손해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이후 10년 전 받은 화해권고결정을 토대로 자신이 거주하던 A씨 소유 주택에 대해 부동산 강제경매 신청을 했다. A씨는 이에 "별도의 보증금 반환요청을 하지 않고 10년 간 거주했는데도 지연손해금이 발생했다며 집을 경매에 넘긴 것은 부당하다"며 이 사건 소송을 냈다.
이 사건은 법률구조공단 소속 이창우(45·사법연수원 31기) 변호사가 대리했다.
이 변호사는 집주인의 임대차보증금 반환 의무와 세입자의 임차건물 인도의무가 동시이행 관계에 있다는 점을 주된 변론 요지로 삼았다. B씨가 자신이 사용하던 주택을 A씨에게 돌려주지 않은 이상 A씨가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더라도 지연손해금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단은 "강제집행이 형식적으로 적법하더라도 그 기초가 된 화해권고결정이 실질적으로 추구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재산 상실의 위험으로부터 의뢰인을 보호한 사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