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요구로 자사 언론인들을 대량 해고했다는 취지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의 결정이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국가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과거사위 결정이 결과적으로 위법하다는 사정만으로 국가의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된다고 단정할 순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동아일보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동아일보 해직 사건에 대한 과거사위 결정은 법령에 따른 적법한 권한행사의 결과로서 설령 그 결정에 사실을 오인한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담당 공무원이 결정을 내리면서 정당성을 상실할 정도로 객관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과거사위 결정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과거사위가 이 사건 결정을 공표한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도 있다"며 "과거사위 결정의 공표 행위는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 해직 사건은 1974년 10월 동아일보 소속 기자들이 박정희 정권의 언론 탄압에 저항하며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광고주들은 자유언론 실천선언 발표 후인 같은해 12월부터 동아일보에 광고를 게재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이듬해 3월 경영 악화를 이유로 기자 18명을 해고했고, 기자들이 "회사가 정권에 굴복했다"며 농성을 하자 116명을 추가로 해임하거나 무기정직 처분을 내렸다.
이후 과거사위는 2년 이상의 조사 끝에 2008년 10월 동아일보 해직 사건에 대해 "동아일보는 위법한 공권력의 압력에 굴복·순응, 정부의 요구에 따라 언론인들을 대량으로 해고 또는 무기정직 시켰다"며 당시 해직 기자 등에게 사과하고 화해할 것을 권고하는 결정을 내렸다.
과거사위 결정에는 "동아일보가 사측의 명예와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해온 자사 언론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정권의 요구대로 해임해 유신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했다", "권력의 간섭이 사라진 후에도 해직자들에 대한 아무런 구제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동아일보는 과거사위 결정에 불복, 2011년 4월 "이 사건 해직처분은 고용관계의 문제일 뿐 국가의 공권력 행사로 인해 발생한 문제가 아닌데도 과거사위가 '공권력에 굴복해 언론인들을 해임했다'고 허위사실을 공표함으로써 명예가 훼손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1·2심은 모두 "과거사위는 2년에 걸쳐 관련자들의 진술을 청취하고 관련 자료를 검토하는 등 방대한 조사를 했고, 당시 시대적 배경과 정부의 영향력 등에 비춰볼 때 과거사위 결정에 논리적 비약이나 무리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면 결정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한편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동아일보가 과거사위의 상급기관인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를 상대로 낸 과거사진실규명결정 취소 소송에선 동아일보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대법원은 "과거사위 결정 과정에 동아일보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잘못이 있고, 해직 사건과 당시 정권의 요구 사이에 관련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정권의 요구로 해직이 이뤄졌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며 "과거사위 결정 가운데 '동아일보가 유신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했다'는 내용과 '해직자들에 대한 아무런 구제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내용 등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