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호르몬 투여' 병역법 위반 기소된 30代 '무죄'

  • 등록 2015.07.11 09: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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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적 성 정체성 '여성'…法, '성 정체성 장애' 판단

생물학적 남성인 박철수(32·가명)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스스로의 내면적 성 정체성이 '여성'임을 깨달았다. 골격이 크고 남성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박씨의 행동은 여성스러웠고, 스스로도 예뻐지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일찍이 깨달은 박씨는 성인이 되자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트랜스젠더 바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박씨는 더 이상 '박철수'가 아니었다. 박씨는 '박민아'라는 예명을 사용하며 남자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지인들도 박씨를 "민아야"라고 부르며 여성으로 받아들였다.

박씨는 그러나 엄격하고 보수적인 아버지와의 약속 때문에 신체적으로 완전한 여성이 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성 정체성과 아버지와의 약속, 생물학적 성별로 인해 고민하던 박씨는 대학병원에서 장기간의 성 정체성 장애 치료를 받기도 했다.

성 정체성 장애란 지속적으로 자신을 다른 성별에 동일시하고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에 대해선 불편함을 느끼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러나 성 정체성 장애 치료에도 불구하고 박씨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성 정체성엔 변함이 없었다.

박씨에 대해 심리상담을 실시한 대학병원은 "박씨가 아버지의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모습에 적개심을 느끼고 저항해온 결과 '흉측하고 사악한' 남성상을 거부하고 여성상을 이상화하며 자신의 정체감을 동일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내놨다.

박씨는 결국 2010년부터 여성호르몬제를 맞기 시작했다. 박씨는 이후 2011년 육군훈련소에 입대했다가 "성 정체성이 의심된다"는 군 의료진 판단에 따라 귀가조치를 받았다.

검찰은 박씨가 예전에도 경계성 인격장애 및 성 정체성 장애를 이유로 입대 후 귀가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는 점을 들어 "병역기피를 위해 성 정체성 장애가 있는 것처럼 속임수를 썼다"며 박씨를 재판에 넘겼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정용석 판사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검찰은 이 사건 재판에서 ▲박씨가 처음 징병검사를 받았을 때 정신과 진료에서 '정상' 판정을 받은 점 ▲개인홈페이지에 "군대가기 싫다"는 글을 남겼던 점 ▲정신과 진료 과정에서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 적이 있는 점을 근거로 박씨가 허위로 성 정체성 장애를 행세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검찰이 내세운 근거만으로는 박씨가 병역의무 회피를 위해 허위로 성 정체성 장애를 가장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박씨가 첫 징병검사 당시 정신과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던 점에 대해 "당시 박씨는 자신의 성 정체성이 주변과 사회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이를 밝힐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며 "성소수자나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보수적이었던 점에 비춰 박씨 주장에 수긍이 간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홈페이지 게시글 중 '군대에 가기 싫다'는 글은 군 복무를 해야 하는 일반인이라도 누구나 표현할 수 있는 주관적인 심정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아울러 "박씨가 정신과 치료 과정에서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라고 진술하긴 했지만 '여성이 되고 싶다'는 취지의 진술도 했다"며 "당시 성전환 수술에 대한 부친의 반대와 자신의 내면적 여성성에 의해 혼란을 겪던 박씨가 그 갈등을 표현한 것에 불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박씨가 평소 남성적 복장을 하고 다녔다는 검찰 측 주장에 대해선 "여성 차림이 다른 사람들의 혐오와 비아냥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라며 "박씨가 자신을 이해하는 지인들과의 자리에선 여성 복장을 했던 점에 비춰 평소 남성적 복장을 하고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성 정체성 장애를 부정할 순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박씨가 2004년부터 성 정체성 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온 점에 비춰보면 입대를 앞둔 2010년에야 비로소 여성 호르몬 주사와 가슴지방이식 수술 등을 받았다고 해서 박씨에게 성 정체성 장애가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강신철 kimm1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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