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의회가 2021년부터 대통령 임기 제한을 없애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3일(현지시간) 통과시켰다. 야당과 반체제 인사들은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의 종신 집권 음모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수도인 키토와 과야킬, 쿠엔카 등 주요 도시에서는 시위대들이 각목을 휘두르거나 타이어를 불태우면서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 등 외신들의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의 임기 제한을 없애고 ▲국가의 언론 정보통신 통제를 강화하며 ▲ 군이 직접 국내 치안을 담당 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16개 항의 개헌안이 이날 에콰도르 의회를 통과했다.
여당인 조국주권고양운동(Alianza PAIS)이 3분의 2를 장악하고 있는 의회에서 표결에 부쳐진 개헌안은 100대8(총 의석 137석)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대다수 야당의원들은 표결에 불참했다.
야당 의원인 루이스 페르난도 토레스는 이번 개헌안 표결을 ‘헌정 사기’로 규정했다.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은 채 개헌안을 통과 시켰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에콰도르 국민들의 80%는 개헌안 수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에콰도르 헌법재판소는 이런 절차가 불필요하다고 판결했다.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프랑스 파리를 방문 중인 코레아 대통령은 개헌안 통과 소식 직후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공동선과 민주주의 정통성을 위한 통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레아 대통령은 이어 “야당 등 반대파들은 에콰도르를 옛날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대중들을 선동해서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고 나라의 통치를 방해하려고 하고 있다”며 “그러나 에콰도르를 통치하는 것은 에콰도르 국민들”이라고 덧붙였다.
오는 2017년 두 번째 임기를 마감하는 코레아 대통령은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었다. 그러나 에콰도르 정치 관측통들은 코레아 대통령이 이번 개헌을 통해 종신집권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언론자유를 감시하는 비정부기구인 푼다메디오스의 세사르 리콰르테 운영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 스타일의 정치 게임이 에콰도르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00년~ 2008년 대통령을 연임했다. 그리고는 2008년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직을 넘긴 뒤 자신은 총리를 맡았다. 그러나 2012년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출마해 크렘린궁에 입성했다.
리콰르테는 코레아 대통령이 푸틴처럼 자신의 후계자에게 대통령 자리를 한 번 넘긴 뒤 2021년 다시 권력을 회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추정했다.
에콰도르 개정헌법은 대통령의 임기 폐지 뿐 아니라 국민들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제약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번 개정헌법에 따르면 언론 정보통신은 ‘공공 서비스’로 규정됐다. 모든 미디어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정부에 부여한 것이다.
현행 언론 정보통신법은 이미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 전국 방송망을 갖춘 방송에 대해서는 정부가 방송 프로그램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신문 사설의 방향에 대해서도 정부가 간섭할 수 있다.
리콰르테는 “정부와 여당의 손에 거대한 미디어의 힘이 집중돼 있다.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개정 헌법은 또한 군이 나라의 비상 상황이 아니더라도 국내 치안을 통제하도록 허용했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는 이번 개헌안으로 인해 에콰도르의 인권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우려했다. 휴먼라이트워치는 올초 “(에콰도르 정부가) 평화적인 시위에 대해서도 지나친 공권력을 동원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에콰도르 경제는 내년에 0.1%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키토에 있는 금융분석 회사인 ‘아날리티카 시큐리티즈’의 라미로 크레스포 국장은 “실업자와 신용파산자들이 늘어나면서 거리의 시위자들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고, 그에 대한 강경한 진압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에콰도르는 베네수엘라와 니카라과에 이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중 세 번째로 대통령 임기를 무제한으로 열어 놓은 나라가 됐다. 볼리비아의 국민들은 내년 2월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3선 허용여부를 묻는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