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오일 혁명으로 국제유가 폭락에 일조한 미국이 표면적으로는 '오일쇼크'의 충격을 견뎌낼 것으로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경제·사회·정치적 여파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9일(현지시간) CNBC는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뒤흔들고 있는 이번 '오일쇼크'는 미국의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위기라고 보도했다.
국제 기준유인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지난 9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전 거래일보다 0.35달러(0.9%) 떨어진 배럴당 37.16달러에 마감했다. 이는 2009년 2월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이지만, 미국은 일부 에너지 업체를 제외하고 '오일쇼크'의 경제적 손실을 크게 입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유가폭락은 미국이 러시아를 견제하려고 일부러 일으켰다는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재닛 옐런 의장은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유가 하락은 미국 경제의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변화"라며 "기름값을 절약할 수 있는 일반 가정들에 유가하락은 감세와 같이 틀림없는 호재"라고 지난해 12월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에너지·광산업체들이 국제유가 폭락에 견뎌내기 위해 강행하고 있는 대규모 구조조정은 수많은 가정들에 "틀림없는 호재"는 아니다.
지난 4일 미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에너지·광산업계에서 직업을 잃은 미국 시민은 12만2300명에 달한다. 또 직업을 잃지 않은 에너지업종 노동자들도 전년 대비 1.5%의 임금을 삭감당했다.
유가 하락으로 허리띠를 조여매야하는 곳은 에너지 기업뿐만이 아니다. 석유가 주요 수입원인 알래스카와 노스다코타, 텍사스, 오클라호마, 루이지애나 등 석유생산주도 재정난을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알래스카의 경우 원유가격을 배럴 당 50~60달러로 잡고 예산을 짰지만, 유가가 40달러 선까지 떨어지면서 재정계획이 무너지고 있다. 노스다코타도 국제유가 하락으로 지난 2년 기준 총수익이 약 7.5%나 감소했다.
아울러 유가하락으로 전 세계 경제와 무역이 둔화되면서 미국 국내의 관광산업과 해양·운수 산업도 타격을 입고 있다.
유가폭락이 전 세계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가담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CNBC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시리아 내전에 참전하기로 한 데에는 유가하락으로 인한 경기침체 중 지지율을 지키기 위한 이유도 있다며 불안정해진 세계경제를 "유가폭락의 진정한 위험" 중 하나로 꼽았다.
러시아가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장함에 따라 이미 불안정한 국가들에 더욱 압박을 가하면서 전 세계 경제가 지정학적 리스크를 껴안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지난주 캘리포니아 샌 버나디노에서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기난사 사건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망언 등 미국 사회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사건들도 유가하락으로 심화된 중동지역의 갈등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