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최대 가전박람회(IFA)에서 삼성전자 전시 세탁기를 파손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성진(59) LG전자 홈어플라이언스(HA) 사업본부 사장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그동안 이 사건을 놓고 검찰 안팎에선 무리한 형사고소, 무리한 수사, 무리한 기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부장판사 윤승은)는 11일 재물손괴 등 혐의로 기소된 조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조 사장과 함께 기소된 LG전자 임원 조모(50) 상무, 전모(55) 전무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세탁기가 일시적으로나마 제품 홍보 목적에 적당하지 않게 파손된 점, 조 사장 등이 세탁기를 만졌던 점 등은 인정했다. 다만 조 사장 등으로 인해 세탁기가 파손됐다거나, 조 사장 등이 세탁기를 파손시킬 고의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합리적 의심이 배제될 만큼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 나타난 조 사장의 행동 등에 비춰보면 조 사장이 세탁기 도어에 강한 힘을 주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강한 힘을 가했더라면 세탁기 본체도 흔들렸을 텐데 이같은 모습은 관찰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당시 매장에 있던 직원들의 진술은 사건 발생 이후 약 6개월이 지난 시점"이라며 "당시 조 사장 등의 모습이나 행동, 일시 등을 기억하지 못하는 점에 비춰보면 증인 진술의 신빙성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당시 IFA에는 많은 사람들이 매장에 방문했으리라고 보인다"며 "방문객으로 하여금 세탁기 도어를 자유롭게 여닫을 수 있도록 한 점에 비춰보면 조 사장 등의 방문 이후에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다른 원인 때문에 세탁기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을 쉽사리 배척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조 사장 등이 허위 보도 자료를 배포해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보도 기사 내용이 거짓이 아니라고 보기 어렵고, 사실이 아니라고도 보기 어렵다"며 "이에 대해 조 사장 등이 허위의 인식이 있었다고도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삼성전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지난 3월30일 삼성전자 측이 조 사장 등의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며 공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선고를 내린 뒤 "양사 모두 선의의 경쟁을 하더라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굴지의 기업인만큼 상호 존중과 상생의 자세를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조 사장은 선고 직후 취재진과 만나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를 드린다"라며 "기술개발을 충실히 해 좋은 제품, 세계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제품, 세탁기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삼성 측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없다"라며 말을 아꼈다.
앞서 검찰은 "고의적으로 삼성전자 세탁기를 부쉈다"며 조 사장에게 징역 10개월을 구형한 바 있다.
조 사장은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에서 삼성전자 드럼세탁기 크리스탈블루의 문을 고의로 파손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당시 삼성전자는 LG전자 임원들이 자사 세탁기를 고의로 부수고 허위 보도 자료를 배포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조 사장과 임원들을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당시 현장을 촬영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하고 세탁기 실물 검증과 소환조사, 압수수색 등을 실시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LG전자 본사와 경남 창원 공장의 임직원 9명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당시 LG전자는 "경쟁사의 일방적이고 무리한 주장으로 인해 글로벌 기업인 당사가 압수수색을 받게 되어 정상적인 기업활동과 대외 신인도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될까 우려된다"고 유감을 표했다.
검찰은 이후 조 사장과 조 상무, 전 전무를 재물손괴 및 업무방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 3월31일 세탁기 파손 분쟁, 디스플레이 특허 분쟁 등 진행 중인 모든 법적 분쟁을 끝내기로 합의했고, 삼성전자는 처벌불원서 등을 제출했다.
하지만 검찰은 "공소가 제기되면 잘못된 부분이 있을 경우 이를 밝혀야 한다"며 공소를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