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폴란드 민주화운동을 이끈 자유노조 위원장 출신 레흐 바웬사(72) 전 대통령이 집권 보수 법과정의당(PiS)의 헌법재판소 권한 제한 법안 강행처리에 대해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폴란드 하원이 전날 밤 헌재 관련 법안을 찬성 235표, 반대 181표, 기권 4표로 통과시키자 바웬사는 이날 현지 라디오 방송 제트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주장하면서, 이 법의 무효화를 위한 국민투표를 촉구했다. 바웬사는 정치적 영향력은 별로 없지만 폴란드 뿐만 아니라 동유럽 민주화 혁명을 구현한 인물로서 여전히 중요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현 정부가 폴란드, 폴란드의 업적, 자유, 민주주의에 반하는 조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전 세계가 폴란드를 비웃을 만한 일”이라며 “해외로 여행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라고 덧붙였다.
22일 폴란드 의회를 통과한 법안은 헌재가 다루는 모든 사안에 대해 15명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최소 13명으로 구성된 패널에 의해 판결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 이보다 훨씬 적은 숫자의 헌재 재판관으로 구성된 패널에서 각 사안에 대해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에 비해 헌재가 판결할 수 있는 사안들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법은 또 판결을 위해서는 현재의 단순 과반수 대신 패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2주인 판결유예 기한도 3~6개월로 연장했다. 이에 폴란드 대법원은 이 법안에 대한 의견서에 “이 법안은 사법권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사법권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는 재판이 더 길어져 사실상 헌재 기능의 마비가 일어날 전조”라고 비난했다
비판 세력들은 논란이 많은 사안들의 경우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는 것이 어려워 사실상 판결을 내리지 못하는 사안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0월 총선 후 의회의 양원을 장악한 보수 정권의 행정권을 견제하는 사법권을 제한한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야당인 폴란드인민당의 대변인은 이날 “현재 폴란드는 대통령이 대통령 역할을 하지 않는 특이한 상황에 있다”며 “대통령이 국가 이익과 민주주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국가수반이 아닌 정당 대표를 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무소속으로 중요한 헌재의 후견인 역할을 거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PIS 소속의 안드레이 두다 대통령이 이달 초 PIS 소속 재판관 5명을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자, 야권은 두다 대통령이 인사에서 직책의 자격요건보다 정당에 대한 충성심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보수 정부 조치에 반대하는 대규모 거리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도 지난 14일 폴란드 우파 정권이 추진하는 일을 사실상의 쿠데타 행위라고 비판했다. 유럽의회는 내년 1월19일 폴란드의 정치 상황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