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사망자 중 70%가 사용했던 제품의 제조사 옥시레킷벤키저가 "가습기 살균제와 인체 폐손상 사이엔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며 관련 실험 결과를 검찰에 제출하자 '검찰 수사에 혼돈을 줄 의도'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학계에선 제조사가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전제조건을 부정해 사건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등 '꼼수'를 쓴다고 비판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 역시 "검찰 수사를 지연시킬 목적"이라며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26일 검찰과 학계 등에 따르면 옥시레킷벤키저가 질병관리본부 폐손상 조사위원회의 지난 2011년 조사에서 가장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당시 실험에 쓰인 독성화학물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의 희석 농도다.
자신들이 만든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New 가습기당번'에 들어간 PHMG의 농도와 실험 당시 농도가 달랐기 때문에 그런 조건에서 만들어진 분석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인체에 유해하다는 판정을 받은 폐손상 조사위 실험 당시 PHMG 농도는 옥시 제품보다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옥시레킷벤키저는 그러나 폐손상 조사위 실험 때보다 낮은 농도의 PHMG를 써 조사를 했더니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는 이런 주장에 대해 "말할 가치도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시 실험은 PHMG의 유해성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 진행됐고 그 결과 독성이 확인된 만큼 조사는 충분히 신뢰성이 있다는 것이다.
폐손상 조사위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사람들이 쓰는 농도의 PHMG를 사용해 동물실험을 했는데 반응이 안 나왔으니 그 물질에 문제가 없다는 게 그들 주장인데 결과적으로 트집 잡기에 불과하다"며 "과연 옥시 직원들은 가습기 살균제를 자신들 가정과 사무실에서 쓸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동물실험에서 분명 유해성을 확인했고 제품을 쓴 일부 사람들에게서도 문제가 발견됐다는 사실, 그게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옥시레킷벤키저 측은 당시 실험이 쥐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실험 결과를 사람에게 직접 대응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3개월간 진행된 실험 기간이 짧다고 주장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폐손상 조사위에 참여했던 다른 관계자는 "사람과 증상이 다르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쥐에서도 똑같은 증상이 나타났다"며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할 수 없어 동물에 실험을 한 것을 문제가 있다고 하니 그저 황당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3개월간 진행한 실험에 대해서도 "증상이 안 나타났으면 더 오래 실험을 할 수 있었겠지만 3개월 만에 폐손상 증상이 나타났다"며 "3개월은 짧은 기간이기 때문에 실험이 잘못됐다는 억지 주장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라고 밝혔다.
옥시레킷벤키저가 검찰에서 이런 주장을 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은 즉각 반발했다.
피해자 가족 A씨는 "정부에서 수많은 전문가를 불러 모아 진행한 조사를 부정한다는 건 결과 자체를 뒤집으려는 목적보다는 시간을 끌려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피해자들을 지치게 한 다음에 뒤로는 합의하려는 속셈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또다른 피해자 B씨도 "피해자들과의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거나 피해 보상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 같다"며 "단 한 번의 사과도 없었던 기업의 파렴치한 모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