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데일리 정경춘기자] 감사원이 공익감사청구를 빌미로 서울시 각 자치구의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하는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명박 정부 당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사실상의 사찰 시도라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서울 성북을)에 따르면, 지난 15일 서울시 자치행정과는 각 구청의 자치행정과/마을자치과 등 유관 부처에 「공익감사청구사항 관련 자료 및 의견 제출 협조요청」 공문을 시행했다.

이에 따르면, 서울시는 7월 13일 감사원 행정안전감사국제1과로부터 관련 공문을 접수하고, 이에 근거하여 “공익감사청구사항(2022-공익-059)과 관련하여 해당 청구사항 검토에 필요한 자료 및 의견을 요청”한다고 하면서 “주민자치회 동자치지원관 및 사업단(원) 채용 시 사회적협동조합, 공무원노조, 세월호 관련 시민단체 출신 인사를 채용한 사실 여부”에 대한 의견 및 자료를 7월 19일까지 제출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는 “타 구에서 동자치지원관 및 주민자치회의 직위에 있던 자들을 다른 지역의 동자치지원관으로 선임하거나, 사회적 협동조합, 공무원노조, 세월호 관련 시민단체 출신 인사를 자치지원관 및 단장으로 임명하는 등 부당한 인사 처리를 했다”는 내용의 공익감사 청구인의 감사청구에 대해 감사실시 여부를 검토하기 위한 사전조사다(「공익감사청구 처리규정」(이하 규정) 제17조제1항).
감사원이 요구하는 자료작성 내용은 상당히 상세하다.
감사원은 “이 건 감사청구 내용 중 사실과 다르거나 반박할 내용이 있으면 근거자료와 함께 제출 및 모든 답변은 자료와 함께 구체적으로 작성・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작성 서식에 따르면, 해당 구청은 검토결과를 “청구인 주장의 사실관계”, “법령 또는 규정 위반 여부”, “검토 결과(업무처리 부당 여부 포함)”, “관련 증거” 등의 순서로 작성해야 한다.
아무리 사전 조사라고 해도, 구청은 감사원이 요구하는 방식에 따라 상세한 검토 결과를 작성할 수밖에 없다.
감사원은 각 구청에 청구인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입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구청은 작성하는 자료에는 자치지원관의 인적사항 등 개인정보가 포함될 개연성이 상당하다.
작성 서식에는 관련 자료가 개인정보일 때 필요한 당사자의 개인정보제공 동의서 작성 관련 안내도 없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경력 등을 포함한 식별정보가 감사원에 제공되고, 감사원이 이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블랙리스트, 민간인 사찰 등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청구인이 주장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공무원노조, 세월호 관련 시민단체 출신 인사를 자치지원관 및 단장에 임명”하는 것이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할 수도 없다.
이러한 주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해 마지 않았던 상식에 정면으로 반한다.
자치지원관 등의 경력이 무엇이든, 설령 그 사람이 관변단체 또는 보수단체 출신이라 하더라도 임용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면 위법 또는 부당한 것이지 특정 단체 출신이라고 해서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감사원은 절차를 이유로 법령 또는 규정 위반 여부 판단을 자치구로 넘기고 있다.
청구인의 주장처럼 감사원이 이들의 임명이 위법 또는 부당하다는 판단을 전제로 깔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주민자치회 동자치지원관 및 사업단(원)은 주민이 참여하는 지역자치 발전사업 중 하나이다.
산재되어 있는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 하나로 모으고, 동시에 동행정의 협력 및 실행지원을 촉진하는 가교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다양한 의견을 지닌 주민이 참여하고, 주관할 수 있는 사업이다.
청구인의 주장처럼 사회적 협동조합, 공무원노조, 세월호 관련 시민단체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 임명이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판단한다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결사의 자유, 노동3권, 직업 선택의 자유, 공무담임권 등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기동민 의원은 “감사원이 공익감사청구를 앞세워 시민단체 출신 인사 자료를 취합하려 한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라며, “전 정권에 대한 보복 수사도 모자라, 자신들에게 눈엣가시와 다름없는 노동계와 시민사회계를 억압하고, 이들이 오랫동안 활동해왔던 주민자치 분야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지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기 의원은 “사회적 협동조합, 공무원노조, 세월호 관련 시민단체 출신뿐만 아니라 주민자치 분야에서 오래 활동한 인사들 관련 정보 취합은 결국 블랙리스트로 활용될 우려가 크다”며, “이번 공익감사청구는 즉시 기각되어야 하고, 사전조사 역시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익감사청구란, 19세 이상 300명 이상의 국민, 시민단체 등 일정 자격을 갖춘 자가 공익을 목적으로 특정사항에 대하여 감사를 청구하면 이를 심사하여 감사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감사원이 감사를 실시는 제도다.
청구대상은 ‘공공기관의 사무처리가 위법 또는 부당하여 공익을 해친다고 판단되는 경우’다(규정 제4조제1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