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 때, 선생님 가시면 다시 죽으려고 했어요.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5일 서울 강북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오후 한 40대 남성이 수유3파출소 소속 김창원(40) 경장을 찾아왔다.
이 남성은 김 경장을 '김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했다.
그러고는 "좋은 대접을 해드리고 싶은데 기초생활수급자라 여유가 없어 이것밖에 못 가져왔다"며 음료수를 내밀었다. 김 경장 앞에서 눈물을 참 많이 흘렸다.
김 경장은 지난 1월11일 오후 2시께 강북구 수유동 반지하 집에서 넥타이로 목을 매고 자살을 시도하던 박모(47)씨를 구했다. 박씨는 2분간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다. 목에 빨갛게 자국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박씨는 또다시 목을 매려고 했다.
김 경장은 박씨를 병원에 인계하지 않으면 박씨가 죽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병원에 가자는 김 경장의 말에도 박씨는 "이제 괜찮으니 경찰 필요없다. 돌아가달라"며 손사래를 쳤다.
김 경장은 이날 오후 8시까지 박씨와 6시간 동안 함께 있었다. 박씨는 김 경장에게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것이 모두 아버지 탓이라고 했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박씨는 아동학대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박씨는 알코올 중독에 조증까지 있었다. 술에 취해 있는 날이 더 많아 오토바이 퀵서비스 일도 나가는 날보다 안 나가는 날이 더 많았다.
박씨는 아버지와 세 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 아들이었다. 박씨 아버지는 종종 박씨를 나무에 매달고 몽둥이로 때렸다. 그런 아버지는 박씨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다.
박씨의 얘기를 한참 듣고 있던 김 경장이 입을 열었다.
"창피해서 얘기를 못했었는데 저도 아버지에게 참 많이 맞고 자랐어요. 공사장에서 각목으로 30분 넘게 맞은 적도 있고요."
박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 경장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도 처음에는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아버지도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랑을 주는 법을 몰랐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버지가 악랄해서가 아니에요. 아버지를 용서하세요."
박씨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 치료도 받겠다고 했다.
박씨는 2개월간 입원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나왔다. 이제는 건강해져서 배달대행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임대아파트 입주도 앞두고 있다.
김 경장은 박씨가 임대아파트에 입주하는 날 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하기로 했다. 박씨에게 사랑을 주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박씨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김 경장을 찾았었다. 반나절 내주는 병원 외출에 '김 선생님'이 보고싶어 파출소를 갔다. 김 경장 근무일이 아니라 만나지는 못했지만 다른 경찰관에게 '박OO이 치료 잘 받고 있으니 염려 하지 말아달라'고 전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박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한테만 이런 아픈 일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반인도 아니고 제복을 입고 국가의 안녕을 위해 봉사하시는 분이 같은 아픔이 있다고 말씀하시니 힘이 났다"며 "'(아동학대가) 나한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데 나만 이렇게 응어리를 가지고 살았구나. 헤쳐나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때 입원을 하기까지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는데 삶이 힘겨워서 다 접으려는 하찮은 사람을 사이렌까지 켜고 김 선생님이 응급환자처럼 대해주시는 데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박씨는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는 기자를 다급하게 불렀다. "김 선생님 다시 만나시면 제가 정말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