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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지역구 다 죽는다"…농어촌 의원들의 20년된 '래퍼토리'

유한태 기자  2015.09.01 18: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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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주동해서 농어촌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되면 도시의 병리현상은 더 심해지고 농촌은 더 피폐해 질 수밖에 없게된다."

얼핏 들으면 최근 지역구 소멸을 우려한 농어촌 의원들의 절규 같겠지만, 실은 20년전인 1995년 14대 국회에서 모 농촌 의원이 선거구획정에 반발하며 쏟아낸 발언이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해 10월 지역구간 인구편차를 종전 3대 1에서 최대 2대 1을 넘지 말라고 결정하면서 60개 지역구가 통폐합 대상으로 떠오른 가운데 농어촌 지역 의원들이 20년전과 비슷한 상황에 직면, 당시와 거의 같은 논리로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특히 비례대표를 줄이지 않는한 246석의 현 지역구 의석으로는 최대 15석 안팎의 지역구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영·호남 지역 의원들의 반발이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우려한 여야 농어촌 의원들이 1일 지방주권지키기의원 모임을 열어 지역구 지키기에 나섰다. 

모임 대표격인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은 "우리의 소명은 대한민국의 중요한 구성원인 농민들과 어민들을 대표하는 목소리를 우리가 내야 한다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 경대수 의원은 "선거구획정위에 의원정수를 300석으로 고정해서 넘길 경우 지금 지역구 의원수 246석, 비례대표 54석이 그대로 갈 가능성이 가장 높다"며 "그렇게되면 헌재 결정 기준에 맞춰 농촌 지역구는 10석 이상이 줄어들고 수도권 도시 의석만 늘어나게 된다"고 반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윤석 의원은 "지난번 헌재 판결은 아주 잘못됐고 탁상 판결의 전형"이라며 헌재를 성토했다. 

이 의원은 더 나아가 "농촌지역이 피해를 보지 않기위해서는 과감하게 국회의원 정수에 대한 논의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널뛰기가 아니라면 '게리멘더링'을 시행해서라도 농촌지역 선거구를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농어촌 의원들의 반발은 선거구획정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레퍼토리가 된 지 오래다. 

특히 자신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기에 이때만큼은 여야의 단결도 일사분란하다.

17대 총선을 한달여 앞둔 2004년 3월 당시 우근민 제주지사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국회로 몰려와 상경투쟁에 나섰다. 인구감소에 따라 3개 선거구를 가지고 있던 제주가 2개 선거구로 줄어드는 데 따른 반발이었다. 

이들은 선거구 재획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지역민들에게 총선을 보이콧 하는 운동을 전개하겠다고까지 경고했다. 

당시 제주와 마찬가지로 통폐합 운명에 놓인 강원도 영월·평창과 태백·정선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도 "통합 선거구는 48명을 뽑게 된 서울 전체 면적의 7배에 달한다"며 "지역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인구 규모에만 얽매여 4개 시·군을 합친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 지역구에서도 "휴전선을 잇는 한반도 허리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에서 1명만 뽑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휴전선 지역 특수성을 감안해달라고 읍소했다. 

20년이 지났지만 이들 농어촌 지역구는 4년마다 사실상 같은 목소리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현역 의원들이 지역구를 잃게 될 경우, 자신들의 지역 기반도 날아갈 것을 우려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도 단체행동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19대 총선을 두달 앞둔 2012년 2월에는 국회 정문 앞에서 국회로 진출하려는 지방의원들과 이를 막으려는 경찰들간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경남 남해·하동 선거구와 사천의 통폐합이 결정된 데 반발한 군민들과 지방의원들이 국회 진출을 시도하며 울분을 터트렸다. 

당시 이 지역 현역의원이던 여상규 의원은 군민들 앞에서 "(공천) 줘도 더러워서 안 받고 싶다. 공천이 됐다 하더라도 반납하고 (정계를) 떠날 것"이라며 "국회 본회의장에서 5분 풀로 채워서 끝까지 반대토론 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여 의원은 그러나 통합 사천·남해·하동군 새누리당 후보 공천을 받고난 뒤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같은 모습을 지켜보는 정치권 안팎의 시선은 곱지 못하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농어촌 의원들이 자신들의 지역구가 사라질 가능성이 큰데 대해 반발하는 점을 이해못할바는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법리보다 정치적 논리에 입각해 자신들의 이익만 앞세우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통폐합 대상인 농어촌 의원들이야 서운하겠지만, 총선을 인구비례로 치른다는 것은 헌법에 나와 있는 것 아니냐"며 "양당 지도부도 처음엔 팔짱을 끼고 구경하다가도 결국엔 동료 의원들을 구제하는 쪽으로 선거구획정을 할 게 뻔하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