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59) 시인이 창비가 주관하는 제30회 만해문학상(상금 2000만원) 수상을 사양했다. 1973년 만해문학상이 제정된 이래 수상자로 선정된 문인이 상을 거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일 창비는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를 통해 김사인 시인의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창비)가 수상작으로 선정됐으나 김 시인이 수상을 고사해 제 30회 만해문학상의 수상자가 없다고 발표했다.
'어린 당나귀 곁에서'는 올해로 등단 35년이 된 시인이 '가만히 좋아하는'(2006년) 이후 9년 만에 낸 세번째 시집이다.
김사인 시인은 창작과 비평에 '심사 경위'와 함께 실린 '간곡하게 상을 사양하며'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번 수상자 심사과정에 제가 작으나마 관여되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며 "예심에 해당하는 시 분야 추천과정에 관여한 사실만으로도 수상후보에서 배제됨이 마땅하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비상임이라 하나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고, 특히 시집 간행 업무에 참여하고 있어 상 주관사와의 업무관련성이 낮다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고 수상 거절 이유를 밝혔다.
또 그는 "심사위원들의 판단을 깊은 경의와 함께 존중한다"며 "그러나 문학상은 또한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후보자의 수락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므로, 후보자인 저의 선택도 감안될 여지가 다소 있다는 외람된 생각을 하게 됐다. 그에 기대어 조심스러운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올해 만해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창비 편집인인 백낙청, 문학평론가 염무웅, 시인 이시영, 소설가 공선옥씨로 구성됐다. 위원회는 지난 23일 본심을 거쳐 김 시인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한 바 있다. 만해문학상은 만해 한용운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73년 출판사 창비가 제정한 상이다.
다음은 김사인 시인의 글 전문.
'간곡하게 상을 사양하며'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 귀중 몸도 마음도 두루 무더운 중에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뜻밖의 통보를 받았습니다. 과분한 일입니다.
신경림 천승세 고 은 황석영 이문구 김지하…… 무엇으로 문학을 삼아야 좋을지 몰라 방황하던 시절, 별빛처럼 길을 짚어주던 저 이름들이 만해문학상의 초기 수상자들이었습니다. 어찌 벅찬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송구하게도 이번 수상자 심사과정에 제가 작으나마 관여되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설사 최종 심의결과를 좌우할 만한 비중은 아니라 할지라도, 예심에 해당하는 시 분야 추천과정에 관여한 사실만으로도 수상후보에서 배제됨이 마땅하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그뿐 아니라 저는 비록 비상임이라 하나 계간 『창작과비평』의 편집위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고, 특히 시집 간행 업무에 참여하고 있어 상 주관사와의 업무관련성이 낮다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이 점 또한 제척사유의 하나로 제게는 여겨집니다.
심사위원들의 판단을 깊은 경의와 함께 존중합니다만, 그러나 문학상은 또한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후보자의 수락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므로, 후보자인 저의 선택도 감안될 여지가 다소 있다는 외람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기대어 조심스러운 용기를 냈습니다. 만해문학상에 대한 제 충정의 또다른 표현으로서, 동시에 제 시쓰기에 호의를 표해주신 심사위원들에 대한 신뢰와 감사로서,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저는 이 상을 사양하는 쪽을 선택하려 합니다.
간곡한 사양으로써 상의 공정함과 위엄을 지키고, 제 작은 염치도 보전하는 노릇을 삼고자 합니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알아줌을 입는다는 것, 그것도 오래 존경해온 분들의 지우知遇를 입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지요. 이미 저는 상을 벅차게 누린 것에 진배없습니다. 베풀어주신 격려를 노자삼아 스스로를 다시 흔들어 깨우겠습니다. 가는 데까지 애써 나아가 보겠습니다. 저의 어설픈 작정이 행여 엉뚱한 일탈이나 비례가 아니기를 빌 뿐입니다. 번거로움을 끼쳐 거듭 송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