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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신경숙 '전설' 부분표절 맞다…창비 주장 동의 안 해"

"신경숙·창비 한국문학 소중한 자산…폄하 안 돼"

정춘옥 기자  2015.09.03 12:5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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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66)이 소설가 신경숙(52) 소설가의 작품 '전설'에 부분 표절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창비의 대응을 비판했다. 하지만 신 씨와 창비가 한국문학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이들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이사장은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나는 '의도적 베껴쓰기'가 아니라는 창비의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며 "'문자적 유사성'이 아니라 신경숙의 '전설'의 일부 문장은 그 어떤 창조적 모방이나 차용이 아니라 의도되었든 아니든 '부분 표절'이라고 본다. 이 점이 창비와 나와의 견해 차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로 인해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나 '외딴방'(그게 '노동소설'이냐 '성장소설'이냐를 논외로 치더라도)의 높은 문학적 성취가 전면 부정되거나 '파렴치한 도둑질'로 폄하되어서는 안된다"며 "그는 누가 뭐래도 90년대 한국문학을 갱신한 유능한 작가이자 아직도 재능이 고갈되지 않고 '지속 성장'이 가능한 우리 문학의 소중한 자산이고 미래다"고 덧붙였다.

그는 백낙청(77) '창작과 비평' 편집인에 대한 자신의 견해도 밝혔다. 

이 이사장은 "나는 세간에서 얘기한 바대로 '백선생만의 창비'라는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창비가 90년대 후반에 주식회사라는 법인으로 바뀌었고 그 최대 주주는 물론 창간의 주역인 백선생이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군사독재 시절의 '창조와 저항의 거점으로서의 역할'이 우리의 양에 차진 않지만 아직도 창비는 '담론'의 영역에서만큼은 어느 잡지도 감당할 수 없는 독보적이며 진취적인 자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고 그것을 일종의 사명으로 자임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시점부터인지 대다수 문학인에게 '창비'가 '우리의 창비'가 아니라 편집인을 비롯하여 특정 편집위원들만의 그것으로 비치기 시작했다는 점만은 '정서적'으로 부인할 수 없다"며 "잘 나가는 소수 작가만을 '편애'한다거나 '(과잉) 비평'을 부여하여 '그들만의 리그'에 끼지 못하는 수많은 국외자를 낳게 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겠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권력 비판자들이 창비의 '상업주의'를 비판하지만 나는 창비가 문학과지성사보다는 낫지만 왕년의 김영사나 민음사만큼 '영리 추구'에 능하지는 못하다고 생각한다"며 "피 말리는 '자본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출판기업에게 '상업'을 포기하라는 일부 논객의 주장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주문이다. 조앤 롤링이나 하루끼를 수입하기 위해 몇십억을 갖다바치는 것은 상업주의지만, 우리의 '좋은 문학작품'을 생산하여 이를 널리 팔아 다수 독자와 기쁨을 향유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상업주의로 몰아부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앞서 백 편집인은 신경숙 작가의 표절 파문이 제기된 지 두 달여 만에 침묵을 깨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달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 책머리에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에 대한 창비의 입장표명이 있었다"며 "백영서 편집주간의 명의로 나간 이 글은 비록 제가 쓴 것은 아니지만 저도 논의과정에 참여했고 거기 표명된 입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백영서 '창작과비평' 편집주간(연세대 사학과 교수)은 지난달 24일 가을호 책머리에서 "저희는 그간 내부토론을 거치면서 신경숙의 해당 작품에서 표절 논란을 자초하기에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합의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유사성을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후 백 편집인은 신 씨를 또 다시 옹호하고 나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는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을 통해 "잡담 제하고 신경숙의 해당대목이 의식적인 베껴쓰기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질문에 답할 정확한 진실은 저도 모른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다만 두 어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다"며 "먼저 신경숙의 변호인을 자임한 윤지관씨도 '신경숙의 '전설'의 일부 문장들이 미시마 유끼오의 '우국'을 표절한 혐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357면)고 했는데, 그 점마저 제대로 인정하려 들지 않은 창비사의 1차 보도자료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었고 회사 대표가 곧바로 사과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둘째로, 그렇다고 그것이 일부러 베껴쓰지 않고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결과라고 보는 문학관, 창작관에는 원론적으로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더구나 상상력까지 동원해서 저자의 파렴치한 베껴쓰기를 단정하고 거기다 신경숙은 원래가 형편없는 작가였다는 자의적 평가마저 곁들여 한국문학에 어쨌든(항상 좋은 작품만 써낸 건 아니지만) 소중한 기여를 해온 소설가를 매장하려는 움직임에는 결코 합류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시영 이사장은 전남 구례 출신으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를 나왔다.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고 '월간문학' 제3회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창작과 비평사(창비)에서 23년 간 편집장·주간을 지냈고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2012년 2월 열린 한국작가회의 정기총회에서 170여 명의 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시집 '만월' '바람 속으로' '길은 멀다 친구여' 등을 펴냈으며 정지용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지훈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