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과의 이견을 조율하고 있는 조정위원회의 조정안과는 별도로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를 제외한 채 가족대책위원회(가족위)와 단독 협상을 진행키로 했다.
반올림은 "삼성의 행동은 조정안을 무력화하려는 것"이라며 "삼성이 귀를 닫고 본인들이 원했던 방향대로만 보상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삼성전자는 3일 '반도체 백혈병 문제 해결을 위한 보상위원회'를 발족했다고 밝혔다. 반올림이 삼성전자의 보상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위와 단독으로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조정위원회는 지난 7월 23일 삼성전자가 1000억원을 기부해 공익재단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공익재단 설립을 거부하는 대신 1000억원의 사내기금을 조성하고 보상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공익재단 설립은 외부 감독 등의 문제 때문에 삼성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족위는 "하루 빨리 보상을 원한다"며 찬성 의사를 표시한 데 반해 반올림은 "사회적 합의를 뒤집으려는 행동"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조정위는 이해 당사자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오는 10월 7일 오후 2시 교섭 주체가 모두 참석하는 비공개 합동회의 방식으로 회의를 다시 열기로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보상위 발족으로 조정위의 협상은 사실상 동력을 잃게 됐다.
반올림 측은 삼성의 일방적인 행동에 당혹감을 나타냈다. 조정위의 권고안을 무시한 채 반올림과의 협상을 중단하고 가족위와 직접 협상을 벌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반올림 관계자는 "현재 공식 견해를 내놓는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라면서 "조정위를 통해 어렵게 만든 조정안을 무시하고 모든 협상을 처음으로 되돌리는 행동"이라고 밝혔다.
반올림 측은 직접 교섭을 통한 협상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라는 사회적 의제를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공익재단을 통한 감시가 없다면 또 다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삼성이 보상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승계 작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안에 반도체 피해자 협상 문제를 마무리해야 '이재용 체제'가 내년부터 '이재용 체제'가 새로이 출범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삼성은 "공익재단을 설립하면 피해자 보상에 시간이 걸리고, 1000억원의 기금 중 일부가 재단 운영비로 빠져나가게 돼 보상금이 줄어들 수 있다"며 공익재단 설립에 반대하고 있다.
한편 보상위원회는 노동법, 산업의학, 사회정책 등 관련 분야 전문가 위원4명과 가족대책위원회·회사 측과 근로자대표 등 7명으로 구성됐다.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을 기초로 삼성전자가 지난달 3일 발표한 보상안의 세부 항목을 검토해 보상기준을 확정할 예정이다. 9월 중순 이전에 보상 대상 질병을 확정하고 상세한 신청절차를 공지할 계획이다.
삼성은 "보상위원회는 추석 연휴 이전에 1차 보상이 집행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