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데일리 정길호] 대외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은 무역 규모가 큰 국가와의 정치 관계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현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대 미국·중국·러시아와의 균형 외교를 강조했던 것과는 달리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보다 중시하는 외교정책으로 이전 정부와는 뚜렷하게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5박 7일간 미국 국빈 방문은 외형상으로는 한미 동맹의 공고함을 표현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강조해 온 가치동맹의 색채가 더욱 짙어진 것과 맞물려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어떻게 취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더 커졌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미국 의회 연설 등에서 "인태 지역 내 규범 기반의 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주요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포괄적이고 중층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을 강조하며 한미 양자관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문제 등 글로벌 이슈에 있어서도 미국과 함께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에 따른 주요 이슈마다 미국과 반대편에 서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에 대한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적 경계감도 내비치고 있는 상황이다. 현 정부의 정치·외교 행보에 따른 위기 상황은 이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미·일 정치·군사적 관계 강화는 그동안 느슨했던 러시아·중국·북한 간의 관계가 좀 더 강화될 것은 물론이고 윤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과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 가능성 언급으로 한국·중국, 한국·러시아 사이에 심각한 수준의 외교적 수사들이 오고 간 바 있어 이어 닥칠 경제적 불안감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실제로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무기 지원에 나서는 상황이 올 경우 러시아 측은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보복 조치를 고려할 것이다.
단기적으론 우리나라에 대한 무역 제재, 그리고 중·장기적으론 북한에 대한 최신무기·기술지원과 더불어 북한 비핵화 논의에 대한 '비협조' 기조를 한층 더 노골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러 간 교역량이 많진 않지만, 전쟁 이후에도 큰 개선이 어렵고 모스크바에 LG전자, 상트페테르부르크 현대차 공장에 대한 자산동결 등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었던 중국, 올해 1분기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1년 전보다 28% 급감했다. 중국의 23개 주요 교역국 가운데 가장 큰 감소율이다.
지난해 1분기 대만에 이어 대중 수출 규모 2위였던 한국은 올해 1분기 대만은 물론 미국, 일본, 호주에도 밀려 5위를 기록했다. 중국의 전체 수입액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1분기 8.1%에서 올해 1분기 6.2%로 내려갔다.
국내 항공사들도 한중 관계 경색 국면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점차 노선을 늘려가는 상황에서 중국인 관광객(유커)들의 방한이 늦어질 경우 우리 경제는 리오프닝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계는 2017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로 중국 정부가 한한령을 내렸을 당시 중국이 항공편을 크게 줄여 큰 타격을 경험한 바 있다. 이러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변화 속에서도 한국경제는 위기 대응 및 타개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는 한국은 미국·일본과의 관계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에 걸맞는 제반 조치가 필요하며 “외교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라는 격언처럼 필요시, 적대국이라 할지라도 상호 국가 원수 방문 추진 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비군사적 교류에 비중을 늘려 더 이상의 관계 악화를 막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영속적인 생존과 번영을 해야 하는 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사명이요 몫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첨예한 국제 관계를 잘 조율하는 치우치지 않는 조정자 역할이 필요하다.
단군조선 이래 동북아 정세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근세 들어서도 정묘/병자호란과 구한말에서 보듯 조선 정부가 국제정세에 대응을 못 해 오판을 거듭하고 주체적이지 못했을 때 우리 민족이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교훈을 현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또한 번영을 위해서는 경제발전을 지속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유불리를 고려하여 주변국과의 관계는 여하한 경우에도 경제활동을 보장받고 위축이 없는 정부의 외교·통상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의 세부 지원 조건을 보면 당혹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더 이상 기업에 맡겨둘 일이 아니고 미국을 집요하게 설득하여 우리 기업에 도움이 돼야 한다.
현 정부는 하고 싶어도 멈춰야 하는 일과 부담스럽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구분하여 추진해야 한다.
전자에 해당되는 것은 한·미·일 관계에서는 어느 한쪽이 불편 부당하지 않는 상호 호혜적 관계 유지의 필요성이고 후자는 대 북한·중국·러시아 관계로 우리 민족이 갖는 유산적 과제이므로 부담스럽다고 회피해서는 곤란하다.
시급히 관계 개선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수준은 한·미·일 관계만큼 중요하다.
* 상기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