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데일리 강철규] 상호관세 유예 시한을 일주일 앞두고 정부가 미국과 관세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사실상 결렬됐다. 고위급 '2+2 통상협의'가 무산된 상황에서 반쪽짜리 협상으로 진행된만큼 타결 가능성에 대한 기대 떨어졌다.
한미 양국은 조속한 시일내 추가 협의 일정을 잡기로 했지만 상호관세 조치 시행 전 국익에 부합하는 합의안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만나 관세협상 타결 방안을 논의했다.
김 장관은 조선·반도체·배터리 등 전략 제조업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 강화 방안을 소개했다. 이를 감안해 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 및 상호관세 완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하게 요청했다.
다만 김 장관과 러트닉 장관은 상호관세 조치가 발효되는 다음 달 1일 이전에 상호 호혜적 타결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지만 확인했을 뿐, 결국 결론에 다다르진 못했다.
이들이 조속한 시일 내에 추가 협상에 나서기로 했지만, 물리적인 시한을 염두하면 타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상호관세 발효까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한이 임박할수록 미국은 협상의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당초 양국 정부는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여 본부장이 동시에 협상 테이블에 앉는 '2+2 통상협의'를 계획하고 있었다. 미국 측에선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카운터파트로 협상장에 나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베선트 장관은 돌연 협상 취소를 통보했다. 이에 구 부총리는 출국 1시간 30분가량을 앞두고 공항에서 급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 미국 측은 취소 사유를 '일정 충돌'이라고 밝혔으며 구체적인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더욱이 미국은 최근 타결된 미일 협상안을 기준 삼아 한국에도 유사한 수준의 조건을 언급하며 압박하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러트닉 장관은 한국 측에 4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금 조성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은 지난 22일(현지 시간)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10%포인트(p) 인하하는 내용의 무역합의를 타결했다. 특히 일본 정부가 사활을 걸었던 자동차 관세의 경우 25%에서 12.5%까지 절반이나 낮췄다.
다만 관세 인하와 맞바꾼 일본의 제시안에는 미국에 훨씬 유리한 내용들이 담겼다. 우선 일본은 반도체·조선·핵심광물·에너지·의약품 등 미국 산업 전반에 활용될 수 있는 5500억 달러의 투자 펀드를 조성한다.
미국산 에너지 수입 늘리고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에도 투자할 방침이다. 미국이 요구하던 농산물과 자동차 시장도 개방했다.
미국 정부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경쟁 관계'로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러트닉 장관은 김 장관과의 협상 직전 CNBC 방송 인터뷰를 통해 "한국이 일본 합의를 읽을 때 한국의 입에서 욕설이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며 "한국과 일본은 서로 경계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미 간 협상 시한은 촉박하긴 하지만, 극적 타결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관측도 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일본이랑 이미 합의를 본 상태에서 한국만 타결하지 않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입장에서도 다음 달 1일 전에 합의를 보는 게 아무래도 유리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