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재는 14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화학적 거세를 규정한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성충동 약물치료법)' 4조 1항과 8조 1항의 위헌법률심판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이날 공개변론에선 화학적 거세 제도의 실효성부터 성범죄의 근본적 원인까지 다양한 토론이 이뤄졌다.
화학적 거세의 위헌성을 주장한 청구인 측 법률대리인은 "화학적 거세 제도의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는 데는 동의한다"면서도 "화학적 거세가 제도의 도입 목적인 '재범률'을 낮추는 데 미치는 효과를 논할 수 있는 학문적 연구나 사례가 없다"고 실효성의 문제를 지적했다.
청구인 측은 또 "화학적 거세는 성범죄 피고인의 형벌이나 치료감호기간이 끝난 후에 이뤄진다"며 "판결 당시와 시간적 간격을 두고 이뤄지는 치료명령이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화학적 거세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인 '재범의 위험성'이 징역형을 치르는 동안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구인 측은 이와 함께 "화학적 거세는 치료대상자의 성적 정체성에 불가역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동의를 구하지 않는 강제적인 약물치료는 치료대상자의 인격권을 침해한다"며 화학적 거세가 실효성에 비해 대상자에 대한 침해가 커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화학적 거세 합헌성을 주장하는 법무부 측은 "화학적 거세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은 성폭력 범죄의 심각성과 사용약물의 안정성을 이해하지 못한 제청"이라고 맞섰다.
법무부 측 대리인은 "화학적 거세 치료대상자는 성도착증 환자로 한정돼 있고 심리치료 병행과 의사의 감정을 요한다"며 "집행절차 중에 부작용 관리를 하는 등 법적인 절차를 충분히 갖추고 남용의 소지도 줄였다"고 설명했다.
법무부 측은 이어 "성도착증은 징역형 등 자유형 집행 중엔 겉으로 완화된 것처럼 보여도 출소 후 사회에서 자극에 노출되면 다시 발현될 가능성이 높다"며 "성도착증 환자의 범죄는 예방이 불가능해서 약물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또 "성폭력범죄는 인격살인으로 지칭될 정도로 피해자의 정신적 신체적 피해가 크다"며 "성도착자에 의한 성폭력 범죄의 근절이라는 공익적 요청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개변론에는 세브란스병원 송동호 소아정신과장과 이재우 치료감호소장이 각각 청구인 측과 법무부 측 참고인으로 나왔다.
송 과장은 "성도착증의 원인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며 "문제가 되는 소아 성기호증의 경우 성폭력범죄가 단순히 성도착증 때문이라기보단 그와 동반한 여러 정신적 문제들과 관련이 깊다"고 설명했다.
송 과장은 아울러 "인간의 성행동과 성도착적 행동이 말초적인 남성호르몬 때문이라고 단순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이 같은 논리에 근거한 약물치료는 의학적으로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 소장은 "화학적 거세시 성적인 각성 정도가 낮아지고 자위행위나 성적 판타지의 빈도가 줄어든다는 사실이 수차례 보고됐다"며 화학적 거세의 필요성과 효과를 강조했다.
이 소장은 "2011년 4월 이후 치료감호소에서 현재까지 총 50여명이 동의하에 화학적 거세를 받았다"며 "이들 중 대부분이 성적 생각의 빈도와 강도가 감소하고 자위행위 빈도도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재판관들 역시 "치료명령 선고 이후 장기간의 수감생활을 거치고도 치료의 필요성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의학적 연구결과가 있느냐", "성적 충동이 아니라 가학적 행위 등에서 오는 지배욕구에 의해 성폭력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 등 심도 있는 질문을 주고받았다.
앞서 대전지법은 2013년 여자 초등학생들을 잇따라 강제 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A씨와 관련해 직권으로 헌재에 성충동 약물치료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당시 재판부는 성충동 약물치료법의 입법 목적은 정당하다고 봤지만, 판결에 따른 화학적 거세 명령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피치료자의 동의가 없더라도 법원 판결로 강제적인 화학적 거세를 하는 것이 수단의 적절성이나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게 재판부의 견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