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부적절한 행정입법에 대해 국회가 수정권한을 갖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밖으로는 청와대로부터, 안으로는 당내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로부터 '위헌 소지가 있다'는 거센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여야 원내대표는 29일 새벽까지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협상하면서 그 과정에서 국회법 개정안도 이날 본회의에서 함께 처리하기로 해 모두 통과시켰다.
해당 개정안은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맞지 않으면 국회가 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 국회법에는 요구 권한은 없었고 '통보할 수 있다'고만 돼있었다.
이를 두고 행정부의 권한을 입법부가 과도하게 침해하면서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여야가 논의하는 것과 연관성 없어 보이는 국회법 개정 이야기가 나온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 이야기를 꺼내면서다.
당시 새정치연합 원내지도부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1과장을 민간인으로 보임해달라는 등의 요구를 하며 시행령 수정을 담보해줄 것을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그러기 위해선 근거 법안이 필요하다며 국회법 개정이 먼저라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여야 원내지도부 간 합의문 초안에는 행정부로서는 다소 '모욕적'인 문구도 있었다. 초안을 보면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하고 수정·변경을 요구받은 행정기관은 이를 지체없이 처리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이라고 돼있다.
이를 두고 지난 28일 새누리당 긴급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친박계 최고위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터져나왔고 끝내 추인을 하지 못하고 의원총회에서 결정키로 했었다.
'지체없이 처리'라는 문구가 빠지고 현재 안대로 의결되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은 "아주 잘 됐다"며 안도했지만,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게 하는 부분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게 당내 일부 의원들의 생각이다.
김진태 의원은 28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법 개정안이 삼권분립의 기초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할 때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 국회에 포괄적인 권한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날 표결 처리할 때에도 새누리당 내에서 이인제 주호영 김재원 여상규 윤상현 김도읍 김진태 김태흠 김현숙 박대출 송영근 의원 등이 반대표를 던졌다.
김재원, 윤상현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의 반대표가 눈에 띄는 가운데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과 이정현 최고위원도 기권표를 던졌다.
당 밖으로는 당장 청와대가 29일 오전 공식적 브리핑을 갖고 반발에 나섰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정치권에서 행정입법의 내용을 입법부가 직접 심사하고 그 변경까지 할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한 것은 법원의 심사권과 행정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상의 권력분립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김 수석은 "법률을 집행하기 위한 정부의 시행령을 국회가 좌지우지하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은 행정부의 고유한 시행령 제정권까지 제한한 것"이라며 "행정부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질 우려도 크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현재 대통령이 국회의 입법권을 견제할 수 있는 대표적 방법인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을 비롯한 방안들도 고려하고 있고, 일각에선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 심판제도를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거부권까지 언급하고 나선 것은 그만큼 충격파가 크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유 원내대표는 청와대 입장에 대해 "어떤 부분이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다소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친박계 핵심인사들의 노골적 반발에 직면해 있는 유 원내대표로서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이 된 것이다.
이번 일을 두고 향후 당청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가운데, 유력 대권주자로 성장 중인 유 원내대표를 향한 청와대의 흔들기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