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명의도용 수면제 처방…본인확인 구멍 뚫린 건강보험

  • 등록 2015.06.16 09: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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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지내다 지난해 귀국한 윤모(33·여)씨. 윤씨는 지난달 14일 소득신고를 하기 위해 국세청 홈페이지에 접속했다가 황당한 기록을 발견했다. 윤씨가 한국에 없었던 1년여 동안 윤씨 이름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내역이 수십개나 있었던 것.

이는 윤씨의 지인 김모(40·여)씨가 윤씨 명의를 도용해 병원을 다닌 기록이었다. 김씨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윤씨 명의로 총 31차례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대부분 정신과 진료로 수면제 처방을 위한 것이었다. 처방이 제한된 향정신성 의약품이었다.

지난 2013년 5월 김씨로부터 "병원에 가야하는데 건강보험이 되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고 얼떨결에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준 것이 화근이었다.

윤씨는 '한번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줬지만 김씨는 계속해서 윤씨 명의로 병원을 다녔다. 

마침 윤씨는 그해 10월 일본으로 떠나게 됐다. 1년 동안 한국을 비울 예정이라 건강보험을 일시정지 시켰다. 윤씨는 김씨가 더 이상 자신의 행세를 하며 병원을 이용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 안심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후에도 수십차례 윤씨 명의로 병원을 이용했다. 김씨는 윤씨의 건강보험이 일시정지 상태였음에도 계속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는 김씨가 진료비용을 100% 환자가 부담하는 비급여 진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윤씨 외에도 지인 4명의 명의를 더 도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씨가 이렇게 타인 행세를 하며 병·의원 처방을 받은 것은 각 병·의원의 본인 확인 절차가 허술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부분의 병·의원에서는 진료 접수시 환자에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주소 등 기본적인 개인정보만을 적도록 한다. 전산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별도의 건강보험증 확인이나 신분증 확인은 생략된다. 

일부 병·의원은 주민등록번호도 생년월일만, 주소도 '동' 단위까지만 확인하기 때문에 건강보험 명의 도용에 온전히 노출돼있는 상황이다.

병·의원에서 본인 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지난 1998년 의료보험요양급여기준 고시에서 의료기관의 본인 확인 의무 규정이 삭제되면서부터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의료계 쪽에서는 다른 업무도 과중한데 왜 우리가 (건강보험 명의 도용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냐는 입장"이라며 "공단 입장에서는 재정 고갈 문제도 크고 처방 오남용 문제도 있어 우려하고 있지만 의료계와 절충이 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몇몇 국회의원들이 본인확인 의무화 법안을 발의했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매번 무산됐다"며 "이에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건강보험 IC카드의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현재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타인의 건강보험증을 빌리거나 무단 도용해 사용하는 건강보험증 부정사용은 매년 늘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현숙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적발된 건강보험 명의도용 건수는 17만5000여건에 달한다.

같은 기간 적발된 인원은 총 4932명, 부정사용 횟수는 약 17만5434건이며 금액은 49억2700만원 상당이다.

실제 지난 4월 동료 직원 12명의 명의로 270여 차례 마약류 의약품을 처방 받아온 간호조무사가 불구속 입건되고 지난 1월 경북 구미에서도 13명 명의로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 받아 투약한 30대 여성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에 경찰 관계자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건강보험 명의 도용 사건은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보통 피해자들도 건강보험 내역을 확인하지 않으니 피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신고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병원에서 최소한 신분증 확인만 해줘도 이런 사건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병원과 피해자 입장에서는 (건강보험 명의 도용으로) 직접적 피해를 보는 게 없기 때문에 병원은 본인확인을 허술하게 하고, 피해자들도 본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지인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신철 kimm1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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