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양심적 병역거부' 공개변론…양심의 자유 vs 국방의 의무

  • 등록 2015.07.09 18: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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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의무 예외 안 돼"vs"양심·신념 강제할 수 없어"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는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심리하기 위한 공개변론이 9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와 충돌할 때에는 제한할 수 있다는 합헌(존치) 측과 양심과 신념에 반(反)하는 행위를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는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한다는 위헌(폐지) 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한 위헌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고 청구인 측과 이해관계인 및 참고인들의 입장을 들었다.

헌재의 심판대에 오른 병역법 88조 1항은 현역 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응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해왔다. 병역법 시행령에 따르면 1년6개월 이상의 실형이나 금고형을 선고받으면 제2국민역으로 편입돼 병역을 면제받는다.

공개변론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인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하지 않고 형사처벌하는 것이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국방부 측은 국방의 의무를 공평하게 부과하는 것은 국민 전체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예외를 둘 수 없다는 입장을 펼쳤다. 국가안보와 존립 등 보호되는 공익이 더 크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한다는 사정만으로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청구인 측은 종교관·세계관 등 한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형성된 양심의 결단을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대체복무 등 다른 대안 없이 형사처벌만을 규정하는 것은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것이다. 

국방부 측 대리인으로 나선 정부법무공단 서규영 변호사는 모두진술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조항은 국가 존립과 영토 보존, 국민의 생명과 안전 수호 등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피해의 최소성도 위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서 변호사는 "대한민국은 남북이 적대적으로 대치하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한반도의 위기 상황은 주변국의 안보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최근 천안함 침몰사고나 연평도 포격사건 등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상황"이라며 "병역회피를 강력하게 제재할 수밖에 없고, 병역 거부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양심을 빙자한 병역 기피자의 급증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청구인 측 법률대리를 맡고 있는 오두진 변호사는 "한 개인이 무력 충돌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개인의 정체성이며 이는 인간의 존엄에 직결된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체성과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가장 소극적인 행동"이라고 반박했다.

오 변호사는 "세계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된 젊은이의 93% 이상이 한국 감옥에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국제적 표준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구인측 박주민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 역시 "대한민국의 군사력은 북한보다 월등한 수준으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추상적 위협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대체복무 도입을 두고도 공방이 오갔다. 

서 변호사는 "대체복무 도입을 주장할 수는 있으나 이는 국가안보라는 공익 달성에 지장이 없을 때 가능하다"라며 "대체복무는 징병제라는 우리 병력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고, 이를 악용한 병역기피자를 양산할 우려가 현저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병역 부담의 형평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욱 광대하고 절대적"이라며 "대체복무 도입에 대한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인데다 믿을 만한 연구결과도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청구인측 김수정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국방부도 2007년 사회복무제도 법안을 발표하면서 대체복무의 필요성을 인정한 바 있다"며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서면·출석 조사를 통해 대체복무 대상자를 엄격하게 심사하고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 복무기간에 비해 더 길게 하면 형평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박 변호사도 "입영 대기자가 필요인력보다 더 많은 현실을 고려하면 대체복무 도입이 병력 자원의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현대전은 군의 정예화와 첨단화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병력 규모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참고인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합헌 주장을 펼친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양심은 주관적인 것으로 나의 양심과 다른 사람의 양심이 다를 수 있다"며 "개인의 양심을 절대적·무제한적으로 존중할 수 없고, 개인의 양심이 국가 질서와 충돌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반면 위헌 주장을 펼친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제는 '다수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한 단계를 더해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시대로 나아가야 할 때"라며 "그 첫 단계는 바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헌재가 빠른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변론은 지난 2010년 11월 공개변론 이후 5년 만이자, '합헌' 결정이 나왔던 2011년 8월 이후 4년 만이다.

앞서 헌재는 "양심의 자유는 중요한 기본권이지만 법질서에 대한 복종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니다"라며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 모두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번 사건의 청구인들도 종교적 이유 등으로 입영을 거부하다가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과 상고심 과정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가 거부되자 헌법소원을 냈다.

공개변론은 3시간 동안 진행돼 오후 5시께 종료됐다. 박한철 헌재소장 등 재판관들은 양측 대리인과 참고인들에게 대체복무 도입의 필요성과 합리적 대체복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 등을 되물으며 심리를 진행했다.

헌재는 변론 내용을 참고해 해당 조항의 위헌 여부를 심리한 뒤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선고 기일은 추후에 지정된다.

한편 병무청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3년 6월까지 6090명이 종교나 개인의 신념 등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했고, 이 가운데 5695명(93.5%)은 징역형이 확정됐다. 지금까지 병역거부로 처벌받은 사람은 1만8000여명에 이른다.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병역법 개정안은 17·18대 국회에서 모두 제출됐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됐고 19대 국회에서도 이런 내용을 담은 법률안이 제출된 상황이다.
강신철 kimm1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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