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농성장에서 맞는 성탄절…"추위와 외로움의 투쟁"

  • 등록 2015.12.25 11: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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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25일 성탄절. 1977년 이후 38년 만에 성탄절 밤 보름달인 '럭키문(Lucky Moon)'을 볼 수 있는 날이다.

서울 도심 곳곳은 전날 24일부터 성탄 연휴 분위기로 물들었다. 대다수 인파가 연인이나 가족들과 함께 광장, 명동, 종로 일대를 거닐었다. 대형 트리 앞에서 함께한 시간을 사진으로 담아내기 바빴다.

모두가 성탄절의 기쁨과 축복으로 들떠있는 가운데 추위와 외로운 투쟁 속에 성탄절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다름 아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촉구" 등을 외치며 고공의 광고판, 광장의 천막에서 성탄절을 보내는 이들이다.

◇고공농성 197일째…"내년 성탄엔 내려갈 수 있겠죠?"

서울 중구 시청광장 옆 금세기빌딩. 옛 국가인권위원회가 입주했던 건물이다. 이곳 옥상에는 기아자동차 화성지회 비정규직 노조원 2명이 198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중 한명인 최정명(45)씨에게 성탄절은 각별하다. '모태신앙'이라는 그는 천주교 집안에서 자랐다. 매년 성탄전야에는 가족들과 함께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지만 올해 성탄절은 고공에서 보내게 됐다.

최씨는 지난 6월11일 기아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전원의 정규직 전환을 주장하며 옛 국가인권위원회 옥상에 올랐다.

앞서 사측이 지난 5월12일 비정규직 4864명 가운데 465명만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안에 정규직 노조와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197일째. 동료 한규협씨와 함께 고공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낮 기온이 2도 안팎을 보였던 24일 오후 4시께에도 최씨는 "핫팩(휴대용 보온주머니) 없이는 견디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광장에서 고층건물 사이로 부는 바람이 옥상 위로 전달되면서 굉장히 춥다"며 "바람에 밥알이며 음식이 다 날아갈 지경"이라고 말했다.

밤이 되면 추위는 더욱 견디기 어려워진다. 최씨는 "잘 때 침낭에 핫팩을 7~8개 넣지만 그래도 깊이 잘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한겨울로 접어들면서 최씨와 한씨의 건강도 악화하고 있다. 지난 22일에는 이들을 걱정한 자원봉사 의료진이 방문했다. 최씨는 지속해서 혈압약을 복용 중이고 한씨도 발뒤꿈치에 동상을 입은 상태다.

추위보다 힘든 점은 자녀들이다. 한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작고 귀여운 꼬마 숙녀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최씨 또한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더 많이 보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최씨는 슬하에 각 12살, 7살 난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최씨는 "작년 12월24일은 가족들과 성탄 미사를 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며 "올해는 힘들겠지만 내년 성탄은 그때처럼 보내길 바란다"고 밝혔다.

◇어느덧 2번째 성탄절…"시민들, 여전히 세월호 관심 많아"

기아차 고공 농성장에서 북쪽으로 약 600m 떨어진 광화문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2년째 거리에서 성탄절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과 실종자 가족,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이다. 광화문광장에 천막농성장이 설치된 것은 지난해 7월11일, 어느덧 1년을 넘어 524일째를 맞았다.

광장 곳곳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눈에 띈다.

농성장에서 노란 리본을 나눠주던 한 자원봉사자는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도 광화문에 나와 리본을 나눠줬다"며 "농성장이 설치된 이후 거의 매일 이곳에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란 리본을 받아가는 등 여전히 세월호에 관심을 두는 시민들이 많다"고 했다.

광장에서 가족, 친구, 연인과 사진을 찍으며 즐기던 시민들도 농성장을 향하면 추모 분위기로 바뀐다.

20대 여성 세 명은 크리스마스 조형 앞에서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은 후 세월호 전시관을 둘러볼 때는 사뭇 진지해진다.

세월호 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만드는 노란 리본 열쇠고리와 스티커를 향한 인기도 여전했다.

한 30대 남성은 "차에 붙일 노란 리본 스티커를 얻고 싶다"며 찾아왔고 몇몇 학생들은 노란 리본 열쇠고리를 받자마자 가방 한편에 매달기도 했다.

지난해와 달라진 점은 농성장에 세월호 가족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이에 대해 "가족들에게 올해에는 광장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며 "모두 가족들과 함께 보내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광화문광장 세월호 천막농성장 뒤편에는 '성탄절 광장문화제' 진행을 위한 무대가 설치돼있다. 각종 캐럴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가로수에 걸린 노란 리본은 여전히 바람에 나부꼈다.

강신철 kimm1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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