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450주년을 기념하면서 슬로건이 없어요. 지금 큰 극장에서 하는 연극의 프로듀서들에게 물어보세요. '당신들이 하고자 개념이 뭐예요? 주제는 뭐죠?'라고요. 그냥 하니까 개성이 없는 겁니다. 셰익스피어니까 한다는 거죠."(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탄생 450주년을 맞은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로 국내 공연계가 들썩이고 있다. 특히, 한국은 아시아에서 셰익스피어 공연 빈도수가 가장 높은 나라다. 그간 그러나 마땅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은 없었다.
한국셰익스피어학회(회장 박정근 대진대 영문과 교수) 및 협회가 극작가 겸 연출가인 이윤택 공동추진위원장과 손을 잡고 대규모의 셰익스피어 문화축전을 조직했다.
4일부터 9월28일까지 대학로 게릴라극장, 충무아트홀, '2014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서 '제2회 한국 셰익스피어문화축제'를 연다. 국내 프로극단, 외국극단, 대학생 원어극, 셰익스피어 키스 교수극단, 시민극단 등이 함께 어우러진다. 장르도 정극, 실험극, 원어극 등 다양하다.
박정근 문화축제조직위원장은 3일 오후 게릴라극장에서 열린 '한국셰익스피어문화축제' 간담회에서 "올해를 셰익스피어의 기운을 폭넓게 확산시키는 계기로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축제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자식들'과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연극'으로 나뉜다. 한국 중견 극작 연출가(이윤택·기국서·양정웅·박근형)와 신예연출가(이채경·오세혁·백하룡), 해외 연출가(알렉시스 부크·오카노 이타루)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재해석한다.
신예연출가가 나서는 '셰익스피어의 자식들' 4편은 게릴라극장에서 연달아 공연한다.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장면을 연습하다(4~27일·작 모리츠 링케·연출 이채경) ▲늙은 소년들의 왕국(5월 1∼18일·작연출 오세혁) ▲길 잃어 헤매던 어느 저녁에 맥베스(5월22일∼6월11일·작연출 백하룡) ▲레이디 맥베스(6월 14∼18일·작·연출 오카노 이타루)가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중견 연출가들이 힘을 모으는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연극' 4편은 충무아트홀과 게릴라극장 무대에 나눠 오른다. 셰익스피어 37편 작품을 97분 길이의 한편으로 재구성한 연극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6월 20~28일·작 제스 윈필드·연출 알렉시스 부크·충무아트홀), 로미오와 줄리엣의 성별을 바꾼 설정의 '로미오와 줄리엣'(7월 1~8일·작·연출 양정웅·충무아트홀), 기국서의 극단 76단과 이윤택의 연희단거리패가 뭉친 '미친 리어 2'(7월 12~20일·작 기국서·연출 이윤택), 박근형의 극단 골목길이 동명 작품을 각색한 '로미오와 줄리엣'(7월 9~27일·작·연출 박근형·게릴라극장)도 차례로 공연한다. 특히 기국서는 '미친 리어 2'에서 리어왕을 맡아 배우로도 나설 예정이다.
이밖에 '시민과 함께하는 아마추어 셰익스피어 연극제' '셰익스피어 문화축제 기념 세미나'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행사' 등도 연다. 한국공연예술연구소가 펴내는 '공연예술저널' 제23호는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기념호로 '셰익스피어와 한국연극'을 주제로 내걸었다.
축제의 포문을 연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장면을 연습하다'는 독일작가 모리츠 링케의 작품으로 이번이 국내 초연이다. 세상의 멸망을 하루 앞두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장면을 연출하는 연출가, 배우들의 이야기다.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무너질 수 없는 가치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연극을 연출한 우리극연극소 출신의 연출가 이채경은 "연극이 말을 넘어서 사람과 소통할 수 있고, 현실을 넘어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그 점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연결된다고 봤다. 극은 결국 죽음 직전에가장 인간적인 부분을 깨닫는데 그런 진리 자체 때문에 셰익스피어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셰익스피어학회 부회장인 김미예 동덕여대 교수는 "셰익스피어가 강의실에서 오랫동안 목이 졸려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홀대를 받았다"면서 "셰익스피어는 학계의 전유물이나 학문의 대상만이 아니다. 이번 축전을 계기로 누구나 같이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연희단거리패의 김소희 대표는 "관객들이 마음껏 셰익스피어를 즐기도록 마련한 축제"라면서 "한국 연극이 셰익스피어의 연극정신을 수용하고 극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