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최다 우승 5회, 플레이오프 최다 최우수선수(MVP)상 3회.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최초로 세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울산 모비스의 주장 양동근(34)의 커리어다. 전·현직 선수 통틀어 최고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포인트가드로서 센스가 부족하다', '투박하다'는 평가는 여전한 꼬리표다.
모비스는 4일 끝난 2014~2015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제) 4차전에서 우승을 확정했다.
양동근은 챔피언결정전 4경기에서 승부처마다 제 몫을 하며 평균 20점 4.8어시스트를 올렸다. 기자단 투표 64표 중 60표를 획득, MVP에 선정됐다.
기자회견에서 평소와 다른 모습이 엿보였다. 겸손함이 바탕에 깔렸지만 절박함과 독기로 키운 냉정함을 감추지 않았다.
양동근은 "어렸을 때부터 잘하는 선수들이 부러웠고, 닮기 위해 노력했다"면서도 "(유망주들이)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딱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내일 은퇴한다는 마음으로 뛰고 있다"고 했다.
"예전만큼의 기량이 되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코트를 떠날 것이다. 5~10분 더 뛰려고 자리를 지키고 싶지는 않다"며 스스로에게도 냉정한 기준을 댔다.
▲신입생에게 밀렸던 평범한 선수
학창 시절, 양동근은 후보 선수였다. 용산고에 입학할 당시 신장은 168㎝로 작았다. 대방초 5학년 때부터 농구공을 잡아 구력에서는 밀리지 않았지만 평범한 기량과 작은 신장이 발목을 잡았다.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후배한테도 밀렸다. 1년 후배 이정석(33·삼성)은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었다. 양동근은 벤치에서 고함을 지르고, 박수 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양동근은 간간이 상대 주요 선수를 막는 역할을 했다. 학년이 오르면서 자리를 잡았지만 유망주로 꼽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용산고는 전통적으로 분업화를 통한 시스템 농구를 구사했다. 요즘 프로농구와 흡사하다. 성적은 좋지만 학생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를 제한한다는 단점이 있다.
▲1순위? 농구화도 빌려 신었다
한양대에 진학하면서 농구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입학을 앞두고 가진 동계훈련에서 기량이 몰라보게 향상된 양동근은 신입생 때부터 적잖은 출전 시간을 받았다.
'출전시간 1분의 소중함'을 일찌감치 깨달은 양동근은 코트에서 모든 힘을 쏟았다. 그는 "1분이라도 뛰고 싶어도 못 뛰는 선수들이 있다. 뛴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는 말을 자주 한다.
'농구 잘하는 선수'들을 이기며 자신감도 갖게 된다. 2003년 농구대잔치에서 당시 최강 연세대를 꺾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양동근이 중심에 있었다.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모비스 유니폼을 입는다.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역대 가장 허약한(?) 학번으로 평가받는 2000학번 드래프트였다. 이 드래프트에 여러 명의 아래 학년 선수들이 조기에 신청서를 낸 까닭이다.
대접도 다른 해의 1순위와 달랐다. 양동근에게 스포츠 용품업체의 후원은 없었다. 통상적으로 업체들은 1순위 선수에게 농구화 등 물품을 개인 자격으로 후원했다.
양동근은 다른 팀 동기에게 얻은 농구화를 신고 팀에 합류했다.
▲유재학 감독 만나 인생 폈다
종목을 불문하고 팀과 선수의 궁합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지도자, 동료와 어떤 환경에서 하느냐에 따라 선수의 운명이 달라지곤 한다.
그런 면에서 양동근에게 유재학(52) 감독은 절대적인 존재다. 유 감독은 신인 때부터 양동근을 중용했다. 기량도 출중했지만 성실하고, 남을 배려하는 생활 모습이 마음에 쏙 들었다.
2004~2005시즌 신인상을 거머쥔 양동근은 이후 탄탄대로를 걸었다.
유 감독은 모비스의 강점을 "근면, 성실, 배려"라는 키워드로 설명했다. 선수는 항상 코트 안팎에서 근면·성실해야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배려심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동근은 지금도 훈련이 끝나면 유 감독의 지시사항을 빠짐없이 메모한다.
'모비스 왕조'를 구축한 유 감독과 양동근은 지난해 10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 감독과 주장으로 12년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합작했다.
구단의 든든한 지원과 배려도 양동근을 키운 자양분이다. 유 감독은 "(양)동근이는 나에게 많은 우승 트로피를 안겨준 선수"라며 "향후에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해서 구단과 상의해 좋은 방향으로 제시할 것이다"고 말했다.
양동근은 "나는 부유하게 자라지 못했다. 항상 절박한 심정으로 농구를 해 왔다"며 "어렸을 때에는 경기에 많이 나가지 못했다. 농구를 관둘까도 했다. 그때를 돌아보면 지금은 정말 행복한 것이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