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평해전' 김학순 감독은 밝게 웃으며 인사했지만, 전혀 밝아 보이지 않았다. 한, 두 번 미소를 보였을 뿐, 인터뷰 내내 김 감독의 표정은 어두웠다. 김 감독의 그 '어색한 밝음'은 개봉을 앞둔 연출가의 기대감 섞인 긴장감과는 달랐다. 마음이 굉장히 무거워 보인다는 물음에 그는 "그럴 수밖에 없지요"라고 말했다.
그가 연출한 '연평해전'은 2002년 6월29일 서해북방한계선 부근에서 일어난 남북한 간의 군사적 충돌, 제2연평해전을 담은 영화다. 이 교전으로 해군 참수리 357호에 타고 있던 국군 6명이 세상을 떠났고 19명이 부상했다. 영화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축제가 열렸던 시기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젊은 군인의 고귀한 희생을 기린다.
실화를 영화화한다는 게 매우 흔한 기획이 된 영화계 상황을 볼 때, 김학순 감독의 가라앉은 마음은 어쩌면 유난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제2연평해전 사건이 갖는 의미와 무게감과는 다르게 너무 쉽게 잊혀진 전투가 됐다는 점,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장사(葬事)를 우리는 너무 쉽게 치르고 어설프게 조문(弔問)했다는 점에서 김 감독의 침전(沈澱)은 합당하다.
'연평해전'을 뛰어난 영화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학적 야심도 보이지 않고, 단순하고 직선적인 화법이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훌륭한 실화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서사의 도약도 없다. 하지만 이런 지적들은 영화 '연평해전'에 관해 이야기할 때 불필요한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북한군과 싸우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한다는 것, 그것 자체다. 이 영화의 의미는 이것 하나면 충분한 게 아닐까.
-보수 언론이 '연평해전'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
"기사가 크게 나왔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스케줄 문제로 읽어보지는 못했다. 어찌 됐든 좋은 글을 써주신 건 감사한 일이다. 한 사람이라도 관심을 갖고 봐야 하는 영화이니까."
-완성된 영화를 극장에서 보니 어땠나?
"내가 준비한 것보다 잘 나온 것 같았다. 러닝타임이 길어서 조금 걱정했고, 슬픈 장면에서 관객들이 정말 슬퍼할지 걱정했는데, 반응이 괜찮은 것 같다. 아직 개봉 안 했으니까 모르는 일이지만…. 이 영화의 감정이 관객에게 전해졌으면 한다."
-언론 시사회 때 유족들이 함께 영화를 봤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더라. 기분이 어땠나.
"난 그 분들의 눈물을 많이 봤다. 같이 행사도 여러 번 했고…. 그보다도 죄송한 마음이 컸다. 돌아가신 분은 6명이다. 영화는 3명만 부각이 됐다. 나머지 세 분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게 죄송했다. 원래는 6명의 이야기를 다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상업영화가 아닌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음…. 전화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한 분, 한 분 살려내지 못한 게 여전히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다. 자꾸 마음에 걸린다."
-시사회 끝나고 유족들이 했던 말 중에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나?
"하신 말씀은 다 비슷했다. 영화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것이었다. 자식이 죽고, 남편이 죽는 장면을 보면서 얼마나 더 할 말이 있겠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부각이 안 된 분들께 죄송스럽고 그렇다."
-마음이 굉장히 무거워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영화가 결국 그 사람들(희생자 6명) 때문에 시작한 건데…. 윤영하 소령 아버님이 그러시더라. '어떻게 만들어도 좋다. 아들들에 대해서 누만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 영화가 그런 것 같지는(누를끼친 것 같지는) 않은데, 내가 이들의 삶과 희생을 잘 표현한 건지 의구심이 든다. 지금도 고민 중이다. 인터뷰 끝나고 돌아가서 영화를 다시 손봐야 하나, 다시 작업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영화로 뭘 말하고 싶었나.
"'연평해전'은 축제 속에서 생긴 비극, 그 비극으로 희생된 이들과 가족을 잃은 이들의 아픔에 대한 헌시다. 우린 너무 쉽게 잊고, 무감각해진다. '나라를 지키자' 이런 말 하려는 게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하자는 거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상업영화를 뭐 그렇게 만드느냐'고. 욕한다면 욕 먹겠다. 그런 거 신경 안 쓴다. 우리가 소홀했던 것을 기억하자고 말하는 일, 아무도 안 한다면 내가 하겠다는 거다."
-힘들게 만들어진 영화다. 7년의 시간이 걸렸고, 우여곡절이 많았다. 크라우드 펀딩 형식으로 제작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당신에게는 이 영화 연출을 그만 둘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 둔다고 해도 누구도 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이토록 매달렸던 이유가 뭔가.
"내 성격이다. 한 번 시작한 거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럴 거면 안 한다. 내가 좋아하는 문구가 있다. '인생은 짧다. 시시하게 굴지 마라.' 모든 일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간에 그만 두는 건 내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이 영화를 완성하는 건 신의를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희생된 분들에 대한 신의인가.
"그렇다. 그 사람들(희생자)이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 이전에도 이 프로젝트를 맡겠다고 한 사람이 있지 않았나. 그런데 이 일이 내게 왔다. 내게 임무가 떨어졌다. 난 내 앞 사람들의 몫까지 짊어졌다고 생각했다."
-'연평해전'을 만드는 건 당신의 운명이었나.
"그렇다. 운명적으로. 내가 이 영화를 연출하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내게 왔다. 이게 운명 아닌가. 최선을 다했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
-힘들었을 것 같다.
"스트레스가 컸던 건 사실이다. 시사회 끝나고 반응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니까 이제 조금 그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것 같다. 영화 만드는 동안 잠을 못잤다. 하지만, 여섯 전사자를 한 분, 한 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여전히 크다."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는 흔하지 않은가. 특히 전쟁물이 그렇다. 단순히 실화가 소재인 전쟁영화 한 편 만든다고 생각하면 안 됐나.
"음…. 천성이다. 난 남한테 피해 주면서 절대 못 사는 사람이다. 이 영화와 관계된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후원했나. 이건 내 명예와도 관련된 문제다. 난 명예를 무엇보다 중요시 여긴다."
-'연평해전'이 의도와는 다르게 이념논쟁으로 빠질 가능성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긴 한데,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 않나. 그렇게 되면 유가족들이 다시 한 번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논쟁이고, 언론이 만들어낸 논쟁이다. 나와 이 영화와는 무관하다. 중심을 잡고 갈 것이다. 유가족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분들은 이미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은 분들이다.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약한 존재다. 하지만 정의와 선, 이런 가치는 강하다. 사람은 사라져도 이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가장 강조하고자 한 부분이 뭔가. 전투장면처럼 보이기도 하던데.
"물론 전투장면도 중요했다. 그날의 아픔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니까. 하지만 나는 거기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남겨진 가족의 슬픔을 보여주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러닝타임이 길어지니까 전투 끝나면서 영화를 마무리 짓는 걸로 하자고 했다. 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유족들에게 직접 찾아가 위로는 못해주지만, 그들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함께 느껴주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박동혁 병장이 오랜 시간 누워있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실종된 한상국 중사를 바다에서 찾아내는 장면은 그런 의미로 들어갔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실제 영상을 썼다. 왜 그렇게 한 것인가.
"고민이 많았던 부분이다. 처음부터 실제 영상을 쓸 생각이 없었다. 배우들이 그 장면을 연기하게 할 계획이었다. 참고를 위해서 영결식 장면을 해군에게서 받아 봤는데, 도저히 배우가 연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 영상을 넣은 것이다. 스태프들의 반대가 심했다. 2002년에 찍은 장면이니까 화질이 얼마나 안 좋겠나. 게다가 그 영상을 상영관 비율에 맞게 확대하니까 더 화질이 깨지더라. 그래도 밀어붙였다. 실제 영상이 주는 울림이 그만큼 크다고 판단했다. 후회 없다. 난 맘에 든다."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의 실제 인터뷰 영상이 마음을 치더라. 그런 영상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나.(윤영하 소령은 한 뉴스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승리를 위해 해군도 응원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영상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떤 기분이었나.
"참 착잡했다. 저 사람이 며칠 뒤에 자신에게 어떤 운명이 닥칠지 모르고…. 착잡함 이상으로 안타까웠다. 우리나라는 정말 유능한 장교 한 명을 잃었다. 윤영하 소령은 정말 뛰어난 군인이었다. 아마 살아있었다면, 별도 달고 참모총장까지 했을 것이다."
-윤영하 소령(김무열) 이야기가 나왔으니 묻겠다. 영화에서 윤영하 소령 캐릭터가 과장된 건 아닌가 생각했다. 너무 '참군인'이지 않나. 그런 군인이 많지 않다는 건 당신도 나도 알고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윤영하 소령은 정말 그런 사람이었다. 극적으로 부풀린 캐릭터가 아니다. 언젠가 나한테 자신을 윤영하 대위와 해군사관학교 동기라고 소개한 사람에게 편지가 왔다. 그 편지에 그렇게 쓰여있다. '영하는 도서관에서 항상 이순신 관련 책을 빌려갔다'고. 훈련도 정말 빡세게 시켰고, 모든 걸 FM대로 한 사람이다. 이희완 대위(이완)는 실제로 윤영하 소령을 존경했다고 한다. 이 대위가 해사 2학년 때인가 윤영하를 보고 '저 선배처럼 돼야지' 생각했는데, 같은 배를 타게돼 기뻤다는 말도 했다."
-'연평해전'이 전하는 메시지에 관해 묻고싶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예상과는 달랐던 것이 당시 정부에 대한 비판이 빠졌다는 점이다. 제2연평해전이라는 사건에는 숭고한 희생과 함께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자들에 대한 합당하지 않은 대우도 포함돼 있지 않나. 실제로 한상국 중사의 아내는 한국을 떠났다.
"예전 시나리오에는 그 부분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대폭 줄였다. 희생이라는 측면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그게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전사자에 대한 정부의 미약한 보상 같은 것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다 찾을 수 있다. 이 영화가 연평해전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한번쯤 이 사건이 무엇인지 검색할 수 있게 한다면 자연스럽게 그런 부분(보상 부분)에 관해서 알게 될 것이다."
-관객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으며 하나.
"영화를 통해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사람들이 많이 알게됐으면 한다. 미국을 예로 들자면, 그 나라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목숨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나. 국민 한 사람이 납치되면 대통령이 발벗고 나서지 않나. 또 대통령 선서할 때, 참전용사들 모셔놓고 진행한다. 이런 거 본받아야 한다. '연평해전'으로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