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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다시 뛰는 하경민 "'잘 데려왔다'는 소리 들어야지요"

프로배구 V-리그 대한항공 센터 하경민(33)에게 지난 수개월은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졌다.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던 큰 수술을 받은데다 데뷔 후 처음으로 무적 신세까지 경험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최근 경기도 용인시의 훈련장에서 만난 하경민은 과거보다 훨씬 다부진 체격을 자랑했다. "몸무게가 90㎏ 정도 나간다. 수술 전보다 오히려 살이 쪘다"고 웃었다. 

하경민이 몸에 이상을 느낀 것은 OK저축은행과의 플레이오프를 끝낸 사흘 뒤인 지난 3월 26일이었다. 탈락의 아쉬움을 곱씹으며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하경민에게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가슴 통증이 찾아왔다. 

하경민은 "누워있는데 가슴을 쥐어짜는 고통을 느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와이프에게 이야기를 하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갔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처음 도착한 병원에서 심각성을 인지했다. 검사 결과 유전자 이상으로 신체조직이 길어지는 마판증후군이었다. 의사는 "당장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경민을 다시 구급차에 태웠다. 그렇게 강남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한 하경민은 도착하자마자 9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상황은 심각했다. 의사는 하경민의 아내에게 "수술 후 8시간이 지날 때까지 환자가 의식을 찾지 못한다면 뇌사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하경민은 "꿈에서 자고 있는데 와이프가 계속 깨웠다. 모르는 척 자려는데 계속 내 몸을 흔들었다. 깨우는 게 너무 귀찮아서 눈을 떴는데 내가 중환자실에 있었다"고 말했다. 수술이 끝난 지 1시간30분 만이었다.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경민은 퇴원 후 다음 시즌을 위해 몸만들기에 돌입했다. 평소처럼 한국전력의 훈련장을 찾았을 때 묘한 기분을 느꼈다. 일주일 뒤 하경민은 한국전력으로부터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 

하경민은 "훈련장에 갔는데 공기가 달랐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사무국장님이 오시더니 다음 시즌 함께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흔쾌히 알았다고 하고 짐을 싸서 숙소를 나왔다"고 전했다. 

소식을 들은 대한항공 김종민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김 감독은 하경민에게 전화를 걸어 "소속팀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와 함께 할 생각이 있느냐"고 제의했다. 

아내는 하경민이 다시 운동을 하는 것을 격렬히 반대했다. 하경민은 "이런 일로는 그만두기는 싫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마무리"라고 말했지만 본인 역시도 반신반의했다. 

주치의의 생각은 달랐다. 수술을 집도한 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외과 송석원 교수는 "왜 운동을 그만 두려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예전보다 몸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고 말했다.

하경민의 경우 다른 마판증후군 환자들과는 달리 수술 부위를 제외한 대동맥이 모두 정상이고 안 좋던 부분까지 수술을 통해 일정 수준으로 돌려놨다는 것이었다. 

병원을 찾아 주치의의 설명을 들은 대한항공은 정식 계약서를 내밀었고 하경민은 흔쾌히 도장을 찍었다. 

현재 하경민은 훈련장에서 재활에 매진하고 있다. 오전과 오후에는 트레이너가 짜준 스케줄을 소화하고 밤에는 개인훈련을 통해 공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있다. 통증은 전혀 없다. 

하경민은 "예전에는 운동을 할 때 호흡이 가빴는데 지금은 같은 운동을 해도 괜찮다. 그때는 그냥 힘들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몸이 안 좋아서 그랬던 모양"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재활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다. 다음 달 개막전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을 정도다. 아직 감각이 완전하지 않아 전체 경기를 뛰는 것은 어렵겠지만 원포인트 블로커라도 뛰고 싶다고 했다. 

하경민은 "국가대표나 우승 한 번 못해보고 그만두는 선수들이 엄청 많다. 나는 두 가지 모두 달성했지만 이대로 끝낸다고 생각하니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면서 "맘 같아서는 첫 경기부터 나서고 싶다.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것은 편하지 않다. 경기에 뛰지 못하더라도 웜엄존에서 선수들과 몸을 풀고 싶다"고 밝혔다. 

다시 돌아온 하경민의 목표는 건재를 과시하는 것이다. 나아가 힘든 순간 자신의 손을 잡아준 대한항공과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장면을 꿈꾸고 있었다. 

"'대한항공이 하경민을 정말 잘 데리고 왔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다. 다시 코트에 서면 정말 벅찰 것 같네요. 우승이 결정되는 경기에는 꼭 코트에 서 있고 싶습니다. 우승 확정 포인트를 제가 블로킹으로 잡아낸다면 너무 드라마틱한 이야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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