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조승우 "나를 가지세요, 당신들의 배우입니다"

한때 연기 잘하는 20대 배우로 영화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말아톤’(2005), ‘타짜’(2006) 이후 흥행 성공작이 나오지 않으면서 ‘영화배우’ 조승우(35)를 호명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뮤지컬배우로 더 잘나가면서 조승우의 메인무대는 스크린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퍼펙트 게임’(2011) 이후 4년 만에 출연한 ‘내부자들’(감독 우민호)은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조승우의 매력을 일깨워주는 영화로 부족함이 없다. 자신이 어릴 적 동경한 대선배 이병헌(45)부터 아버지뻘인 백윤식(68)까지 세대를 넘나드는 남자배우들의 불꽃 튀는 연기대결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성공을 욕망하면서도 ‘괴물’은 되지 않는 우장훈 검사를 그저 정의롭기만 한 단선적인 영웅이 아닌, 복합적인 인물로 빚어낸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래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을 뿐 그는 참 능청스레 연기를 잘했지.’

이병헌도 인정했다. “승우씨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연기를 잘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자기화를 잘 시키는 배우로, 그런 능청스러움이 부럽다.”

영화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일까. 까칠한 배우라는 소문과 달리 조승우는 여유가 있으면서도 솔직한 모습으로 스크린 밖에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예술의 낭만”과 “운명적 사랑”을 꿈꾼다는 점에서 피가 뜨거운 천상 예술가가 아닌가 싶다. 

-‘내부자들’ 출연을 고사했었다던데.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다. 막내 이모부가 검사 출신인데 강직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반 농담으로 내가 그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왜소해 보였다고 했는데, 돌이켜보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영화 속 그 세상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굳이 그 (부패와 비리의) 세계를 몸소 느끼면서 연기를 해야 할까, 정신적으로 공감될까. 시나리오가 나빠서가 아니었다.”

-마음을 바꾼 이유는?

“‘말아톤’ 이후 이렇게 주위에서 왜 그 영화를 안 하느냐고 성화인 작품이 없었다. 그동안 내 주관만 갖고 작품을 선택했는데, 그렇게 선택한 작품이 흥행이 잘 안 되기도 했고(웃음). 내가 작품 보는 눈이 시대를 못 따라가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타인의 추천을 믿어봤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도 주위에서 집요하게 추천해서 한 작품이었는데, 둘 다 결과가 좋았다.”

-우민호 감독이 이병헌이 출연한다면서 설득했다던데.

“선배는 시나리오 보자마자 한다고 했다더라. 선배의 안목도 믿었다. 또 우민호 감독이 내가 분량이 적어서 안 하는 줄 알고 수정해 오고 그랬는데, 진짜 그 이유는 아니었고, 감독이 여러 차례 해요, 하자, 하면서 막 졸랐는데 되게 귀여웠다.” 

-검사 역할을 위해 일부러 살을 좀 찌웠나.

“‘내부자들’ 촬영 직전 살이 좀 쪄있는 상태였다. 빼면 더 어려 보이고 왜소해 보일 것 같아서 그냥 갔다. 요즘은 진짜 나이를 먹어서 살빼기도 힘들다. 영화 이후 뮤지컬 공연이 예정돼 있어서 자연스럽게 살이 빠지니까 굳이 안 빼고 약간 통통한 채로 찍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좀 빠진 상태다.”

-극중 단체로 탈의한 채 술 마시는 장면을 찍었다.

“그동안 엉덩이는 참 많이 노출했다. 만인의 엉덩이였다. 이번에는 그 이상 벗었는데,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 사실 옛날에는 노출신을 극도로 꺼렸다. 이제는 필요하면 어떤 노출도 불사할 마음의 준비가 됐다. 이번 노출신은 선생님들 다 벗고 있고, 출연해준 여성들도 다 벗고 있는데 내가 주저할 상황이 아니었다.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

-무의식적으로 거부했던 이 영화의 세계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허구를 다룬 영화적 인물들의 이야기나 뉴스에 안 나온 내용은 없다. 그걸 모티브로 삼아 만들었고, 이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극적 요소를 가미해 야망과 야욕을 가진 남자들이 얽히고설킨 사회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객의 몫이다.”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보나.

“우리 영화의 엔딩은 긍정적이다. 원래는 지금보다 무겁게 끝났다. ‘오른팔이 없으면 어떡하냐, 왼팔로 쓰면 된다’ ‘그 길목을 막아도 또 어딘가로 샌다’, 뭐 그런 점들이 강조됐다. 지금은 권선징악이 빛이 보이게끔 끝난다. 희망의 불빛을 켰다.”

-속편이 나와도 무방한 결말이다.

“그런가? 나오면 좋겠다. 갑자기 설레네. 하하. 속편을 찍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한동안 영화보다 뮤지컬에서 더 활약했다. 흥행이 안 된 영향인가?

“좋은 영화야 늘 찍고 싶다. 내 기준에 맞는 새롭고 자극적인 영화. 마음에 드는 여자를 길가다 만났을 때처럼 내가 다 흔들리고, 찌릿한 그런 시나리오가 있으면 좋다.”

-흥행여부가 겁나나.

“겁나지는 않는다. 흥행은 배우의 몫이 아니라고 본다. 여러 가지가 맞아떨어져야 흥행하더라. 예전에는 나 때문에 흥행 안 된 거 같아 괴롭기도 했다. 지금은 과정이 중요하고, 작품적으로 인정받고 그럼 흥행은 뒤따라오는 거라 생각한다. 지금 내 나이가 좀 어중간한데, 어떤 시기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내 나이에 어울리는 영화가 있겠지.”

-뮤지컬은 팬층이 두텁더라. 

“그들은 뮤지컬 팬이라기보다 조승우 팬이라고 한다. 얼마 전 문득 게시판에서 ‘내 배우’라는 표현을 보고 울컥했다. 공연 끝내고 집에 가던 길에 좀 센치해졌을 때였는데, 그 글을 읽고 고마웠다. 날 가지세요. 당신들의 배우입니다, 그런 기분. 너무 고맙고 좋았다.” 

-슬슬 결혼을 생각해볼 나이다.

“아직 아니다. 36살밖에 안 됐는데. 운명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을 꿈꾼다. 무모하다고 느낄 정도로 추구한다. 진짜 전기가 찌릿 오는 그런 여성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이 나이되면 결혼을 전제로 만나야 한다고 하는데, 그거만큼 낭만적이지 않은 게 어디있느냐. 연애를 해봐야 결혼을 결정하지.”

-지금 사귀는 사람 없나?

“안 만난 지 꽤 됐다. 이제 숨기는 세상이 아니잖나. 아이돌도 대놓고 만나는데, 나처럼 늙수그레한 배우가 누구를 만나는지 관심도 없지 않겠나. 만약 내게 파파라치가 붙는다면 찍을 게 없을 거다. 삽살개 데리고 혼자 산책하면서 똥치우고 있을 거니까.”

-반려견을 키운 지 얼마나 됐나.

“11년 됐다. 삽살개 전에 몰티즈를 키웠는데 ‘아지’라고 10살에 죽었다. 내가 뮤지컬 공연하면 무대 아래서 나를따라 노래를 불렀다. 그 아지와 눈빛이 닮은 견종이 바로 삽살개였다. 삽살개보존회에 가서 절차대로 데려온 개다. 역시 명견이다. 이름이 단풍인데 우리집 서열 1위다. 고양이도 4마리 함께 지내고 있다.”

-애인이 반려견에 밀리는 거 아닌가.

“그럴 리가. 말 나온 김에 나는 동물을 사랑하는 여자가 좋다.” 

-반려견과 산책하기 말고 취미는 없나.

“바이크를 타는 게 취미였다. 내 군대 선임이었던 류수영, 그리고 아는 형과 셋이서 속초까지 달려가서 물회 먹고 왔는데, 그놈의 미세먼지 때문에 못 타고 있다. 공연에 지장이 가니까.”

-연기와 공연 중 어느 게 더 체력소모가 심하나.

“연기가 더 힘들다. 무대는 딱 집중해서 몸 풀고 공연하면 된다. 흐름만 타면 술술 간다. 하지만 영화는 하루 종일 뒤죽박죽 감정신 찍다가 액션신 찍고, 지방 오가고 밤샘 촬영도 한다. 드라마 ‘마의’할 때는 생사를 오가는 추위를 체감하며 무대의 고마움을 느꼈다. 한겨울에도 공연장은 따뜻하잖나.”

-나이가 든 뒤로 여유로워졌나.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더 자유로웠다. 물론 지금도 자유롭다.” 

-불같은 사랑을 꿈꾸는데 배우 조승우를 뜨겁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예술의 원동력을 낭만과 연관 짓고 싶다. 낭만과 인간 만이 가지는 외로움과 고독함. 평소에 현재나 미래보다 과거 이야기에 훨씬 더 매력과 애틋함을 느낀다. 옛날 감성이 사라져 아쉽다. 영화나 무대에 낭만적인 것들이 많이 녹아나면 좋겠다.”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