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15일 공개한 '문화재 보수 및 관리실태' 감사결과는 숭례문을 비롯한 주요 문화재들이 정부와 지자체의 부실한 관리, 감독으로 병들어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자료였다. 그야말로 총체적 부실상태인 것이다.
감사원은 국보 1호 숭례문 곳곳이 복원 5개월 만에 훼손된 것은 사업계획 수립단계부터 전통기법과 도구로 복구하기로 한 기본원칙을 어기고 실제 공사도 부실하게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숭례문 뿐만 아니라 독립문과 첨성대 등에 대한 보수·정비에서 보존·관리까지, 문화재 정책 전반에 다수의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숭례문 시대양식 '뒤죽박죽'…공기 맞추다가 부실시공
감사원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2008년 5월 '숭례문 복구 기본계획'에 따라 사업 전반을 직접 관리하면서 명맥이 단절된 전통기법을 재현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일반공사보다 1~2년 많은 5년으로 공사기간을 설정했다.
단순하게 설정된 공기는 숭례문 부실복원의 빌미가 됐다. 문화재청은 수간분채나 아교 등을 사용하는 전통단청 시공기술 및 경험이 없는 홍창원 단청장에게 숭례문 단청공사를 맡겼다.
공기에 맞추기 위해 홍 단청장의 명성만 믿고 시공능력에 대한 검증은 소홀히 한 것이다. 홍 단청장은 아교가 흘러내리고 색이 흐려지는 등 전통단청 재현에 실패하자 사용이 금지된 화학접착제와 화학안료를 몰래 섞어 사용했다.
결국 접착력이 약한 아교층과 반대로 접착력이 강한 화학접착제가 덧칠돼 발생한 장력 차이로 단청 훼손이 발생했다. 단청에 물이 닿으면 얼룩이 생기자 문화재청은 충분한 연구도 없이 테레빈유로 희석한 동유를 단청 전체에 발라 오히려 화재 위험성만 키웠다.
또 문화재청은 지반을 제외한 다른 공종은 숭례문이 세워진 조선 전기 양식으로 복구하기로 결정하고도 시공편의를 위해 조선 전기부터 중·후기, 현대양식까지 뒤섞은 채 시공했다. 이로 인해 숭례문은 시대적 통일성과 일관성을 상실하게 됐다.
대표적인 게 숭례문 지붕의 기와다. 문화재청은 고증을 거쳐 2011년 4월 기존 숭례문의 기와규격에 맞춘 6000여장의 암키와(490×370㎜) 및 수키와(440×220㎜) 제작에 착수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뒤 문화재청은 시공이 번거롭다는 기와생산업체의 의견을 듣고는 KS규격의 암키와(420×360㎜)와 수키와(360×180㎜)로 규격을 변경했다. 숭례문 지붕은 화재 전과 크기와 모양이 다른 기와가 얹어졌다.
복구용 철물도 전통제작기술로 대량생산이 가능한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사업을 추진했다가 필요량(1t)의 2%(22㎏)에도 못미치고 품질도 불량한 철물만 주조했다. 그러자 문화재청은 경복궁에 보관 중이던 조선시대 철물 2만351점과 현대 철물 1만1965점을 대신 사용해 숭례문의 시대양식을 더욱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조선 중·후기를 기준 시점으로 설정된 숭례문의 지반복원 작업도 시공편의를 위해 일률적으로 화재 전 지반에서 30㎝ 내외의 흙만 걷어냄으로써 당시 지반보다 9.7~29.9㎝ 높게 복원됐다.
◇문화재 부실시공 다수…주변시설에만 예산 집중
면밀한 고증 및 일관된 복원기준 없이 수리하거나 부실시공으로 문화재를 훼손한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사적 32호로 지정된 독립문은 보존처리 공사 과정에서 시공업체가 녹물, 백화현상(건물의 벽면이 하얗게 굳는 현상) 등의 오염을 제거하고 상륜부(꼭대기 부분)의 이음새를 보강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울 서대문구는 그대로 공사를 준공처리했다.
충남 부여군은 사적 58호인 부여 나성 정비공사를 2008년 12월부터 시행하면서 1차 사업에서는 높이 5.48m에 폭 15m로 77m 길이를 복원하고도 2차 사업 이후에는 높이 7.3~8.5m에 폭 22m로 남은 부분을 복원했다. 시공연도별로 성곽 규모가 들쭉날쭉해진 셈이다.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의 문화재 보수·정비에서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는 불합리한 예산 배분이다.
문화재청은 매년 지자체로부터 신청을 받아 국비로 지원할 문화재 보수·정비 대상을 선정하고 있는데 보수가 시급한 문화재보다 전시관 건립이나 화장실 개축, 배수로 정비 등 주변정비사업에 더 많은 예산을 쏟는 '주객전도'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2008~2013년 문화재청의 정기조사 결과 보수가 필요하다고 조사된 국보·보물 191건 중 117건(61%)은 지자체의 신청이 없다는 사유로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다. 같은 기간 문화재 보수·정비사업 예산의 51.7%(2053억원)이 문화재가 아닌 주변정비사업에 쓰인 반면 문화재 복원사업에 쓰인 예산은 22.9%(908억원)에 불과했다.
실제 보물 1211호로 지정된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는 2010년 문화재청의 정기조사 결과 곰팡이 때문에 보존처리가 필요하다고 조사됐지만 관할 지자체의 신청이 없었다는 이유로 국고보조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보관하고 있는 사찰의 앞마당 등 주변정비사업에는 12억여원이 지원됐다.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수리 품질의 향상을 위해 5억원 이상 공사에 한해 전문감리업자가 감리를 맡도록 한 감리제도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감사원이 경기도 등 2개 지자체에 대한 표본조사를 실시한 결과 554건의 문화재 수리공사 중 감리원이 감리를 맡은 공사는 19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535건(96.7%)은 전문지식이 없는 공무원이 직접 감독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 개인 소유자가 직접 보조금을 지원받고 보수·정비에 나서는 민간자본보조사업의 경우 시공업체를 사업자가 수의계약해 예산이 낭비되고 시공업체에 자기 부담을 전가하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밖에 문화재청과 지자체의 관리·감독 소홀로 보수기술자 등이 업체에 자격증을 불법 대여하거나 현장을 무단이탈하는 사례도 횡행했다.
◇첨성대 매년 1㎜씩 기울어도 안전점검 미흡
국보 31호 첨성대의 경우 2009년 10월 북쪽으로 20㎝(상단부 기준) 가량 기울어진 사실을 확인한 이후 지반침하 때문에 매년 1㎜ 가량 기울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경주시는 지난해 12월 정밀구조안전진단 용역에서 원인규명에 필수적인 지반상태 조사를 제외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첨성대 상부의 석재가 떨어져 나갈 위험이 있는데도 문화재청에서 긴급보수사업비를 지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전조치 없이 방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첨성대와 같은 석조나 목조문화재는 미세한 균열이나 풍화 등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변형이나 붕괴가 발생하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친 주기적 안전점검이 필수적이라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하지만 문화재청 산하인 국립문화재연구소는 30여년간 전체 석조 및 목조문화재의 3.6%(51건)에 대해서만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그나마도 25건은 1~5회의 단발성 점검에 그쳤으며 안전점검 결과는 보수 작업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매장문화재나 환수문화재 관리에 있어서도 허점이 드러났다. 발굴조사기관 등에서 출토한 유물 중 보존가치가 있는 매장문화재는 발굴조사 완료 후 2년 이내에 국가귀속 신고를 해야 하는데도 최대 49년간 귀속되지 않은 채 방치됐다.
또 2004~2013년 협상이나 기증, 구입 등의 경로를 통해 해외에서 환수한 문화재 4732점(62건) 중 4676점(55건)은 문화재청의 소극적 태도로 국가나 지방문화재 지정 여부도 검토되지 않고 방치된 상황이다.
일례로 진경산수화라는 화풍을 개척한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의 화첩은 2005년 10월 독일로부터 환수됐을 당시 언론과 전문가 등으로부터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보나 보물 지정 여부가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
아울러 감사원 감사결과 공주 마곡사 영산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양산 통도사 대웅전 등의 목조 문화재는 기준에 맞지 않거나 고장난 소방시설을 그대로 두고 있어 화재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