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우대식 '시에 죽고, 시에 살다'..요절시인 12인 치열한 삶과 죽음

시에 죽고, 시에 살다 (우대식 지음 / 새움 펴냄)

‘1992년 8월 25일./ 모르핀 치사량으로 죽은 내 기일(忌日)/ 그 면도날, 팔목을 자르거나, 아니, 어쩌면/ 내가 벌거숭이로 태어나던/ 날, 내 기일(忌日)’(이연주 ‘탄생의 머릿돌에 관한 회상’ 중)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 진눈깨비’(기형도 ‘진눈깨비’ 중)

‘저녁 무렵,/ 지는 해를 붙잡고 가슴 허허하다가 끊어버린 손목. 여러 갈래 짓이겨져 쏟던 피 한 줄./ 손수건으로 꼭, 꼭 묶어 흐르는 피를 접어 매고/ 그렇게도 막막히도 바라보던 세상./ 그/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여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중)

위 시인들은 모두 요절했다. 자신의 삶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청춘의 시간 동안 치열하게 시에 매달렸고, 짧은 시간 엄청난 시의 흔적들을 남겼다. 그리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사람 살이가 늘 상처투성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시인들만큼 미늘의 바늘로 상처를 낚아채는 존재들도 드물 것이다. 그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라는 존재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했다. 아찔하다.”(5쪽)

1999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단검’ ‘설산 국경’ 등을 펴낸 우대식 시인이 먼저 떠난 시인의 자취를 밟았다. 시인들의 고향이나 그들이 거쳐 간 곳들을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유족과 지인들을 인터뷰했다. 파주의 통일동산에서 땅끝 완도까지 1만㎞에 가까운 여정이다.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연주·신기섭·기형도·여림·이경록·김민부·김만옥·김용직·원희석·임홍재·송유하·박석수 등 시인의 삶과 시를 만날 수 있다. 이들의 삶 자체가 시인 까닭에 인터뷰, 연대기 중심으로 써내려간 글들도 시가 됐다. ‘시에 죽고, 시에 살다’는 ‘십이인보(譜)’인 셈이다.

버스 전복 사고, 심야극장에서의 죽음, 간경화증, 백혈병, 화재, 자살 등 죽음의 이유는 다르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살기 위해 몸부림친 사람들이다. 요절 시인들의 시 곳곳에서 보이는 삶에 대한 치열함은 세월을 견뎌 오늘에도 울림을 준다.

정호승 시인은 “시인에게 시는 운명이다. 시인은 죽어서도 시를 쓴다. 천국의 새벽까지 등불을 밝히고 시를 쓰고 시집을 내고 맑고 따뜻한 목소리로 시를 낭송한다. 이 책은 일찍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삶 자체가 한 편의 위대한 시가 된 시인들의 이야기”라고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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