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앤컴퍼니 설도윤(55) 대표는 뮤지컬 '위키드'로 한숨을 돌렸다. 10월5일 종연 시점까지 단일 뮤지컬 사상 최다, 최대인 36만명 관람, 300억원 매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인 설도윤 대표는 그런데도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위키드' 건으로 만난 설 이사장은 거듭 뮤지컬 시장 얘기로 화제를 옮겼다. "'위키드'를 자랑할 수 만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뮤지컬 시장은 전례 없는 불황을 겪고 있다. 공급 과잉, 제작비 상승 등의 요인이 크다. 지난해 무대에 오른 뮤지컬만 2500여편에 달했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가 직격탄이 됐다. '위키드' 역시 객석 점유율이 세월호 참사 직전까지 95% 이상을 유지하다가 사건 직후 50%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11월22일 개막한 '위키드'의 예상 관객은 40만명 이상이었다.
실험적인 작품으로 주목 받은 메이저 뮤지컬제작사 중 한 곳인 뮤지컬해븐(대표 박용호)은 결국 법정관리 신청서를 냈다. 올해 무대에 올릴 예정이던 '스위니 토드', '키다리 아저씨'도 취소했다.
또 다른 메이저 뮤지컬제작사는 수년째 위기설에 휩싸였다. 뮤지컬제작사들이 취소하거나 미룬 뮤지컬이 10편 안팎에 이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뮤지컬계을 위해 출연한 기술보증기금 100억원은 대출 조건에 맞는 뮤지컬제작사가 몇 군데 되지 않아 '그림의 떡'이 됐다. 그러다보니 일부 제작사는 제도권 밖 금융으로 몰리고 있다.
설 대표는 "공연제작사들이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고 토로했다. "가뜩이나 불황이었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 투자가 원할하지 않다. 정서적으로 충격이 너무 큰 탓에 엄마들은 공연을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돈이 돌아야 하는 뮤지컬계 속성 때문에 작품을 계속 올리다 보니 "공급이 너무 많아져 문 닫는 회사가 늘어 있다"고 전했다. "후배 뮤지컬 제작자들에게 '다작을 하면 안 된다. 공급을 줄이자'고 제안하고 있지만 그게 잘 안 되죠. 돌릴 돈이 있어야 하니까. 작품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빚이 많다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뮤지컬 전용극장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짚었다. 특히, 국내 첫 뮤지컬전용극장으로 장기 공연을 배려해주는 샤롯데시어터를 긍정적인 사례로 들며 한남동 블루스퀘어 등 다른 뮤지컬전용극장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그리고 CJ E&M 공연사업부문, 인터파크 INT 등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이 강화됐으면 한다는 마음이다.
또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처럼 뮤지컬과 연극 등 공연 시장의 통계를 내는 '티켓통합전산망'이 하루 빨리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시범적으로 티켓통합전산망을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일부 의 반대와 참여 부진 등을 이유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티켓 순위나 판매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돌고 있습니다. 일부에서 독점적으로 불합리하게 순위를 매기는 바람에 다른 제작사, 관객들이 피해를 입고 있어요. 시장 경제의 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티켓통합전산망이 필요해요. 어려운 시기일수록 다 같이 살아야하죠."
무엇보다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으로서 정부의 정책적인 도움을 주문했다. "국가적인 재난으로 서비스 산업이 피해를 입은 이때, 정부의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축제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시켜주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나서서 공연, 축제로 국민들을 치유하고 정서적으로 회복시켜주는 것이 필요하죠. 지금은 정부가 역으로 서비스를 죽이고 있어요. 머리카락을 다 깎고 시위에 나서고 싶을 정도의 심정입니다."
한편, 통합전산망사업 구축에 중요한 역을 요구받고 있는 업체 관계자는 "예매처에서 팔리고 있는 공연의 판매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고 통계화하는 건 우리가 결정하거나 방해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면서 "공연별 데이터는 기획사 권한이라 업계 전반의 동의와 지원책이 병행돼야 한다. 지금도 문체부와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 회사는 예매순위를 불합리하게 매기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러나 "예매사이트에 티켓판매를 위탁하고 좌석비중을 배분하는 것은 기획사들의 선택"이라면서 "티켓 판매처마다 인기 공연 순위가 다르다고 모든 사업자들의 시스템을 통합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다만 히트공연 데이터를 정부가 집계해 정보화하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