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78) 교황이 16일 오전 한국 초대 교회의 순교자들이 고초를 겪은 서소문 성지를 방문했다.
순교자들의 희생을 상징하는 붉은색 제의를 입은 교황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제단에 오르면서 시복미사는 시작됐다. ‘시복(諡福)’이란 가톨릭에서 신앙과 덕행을 인정받은 사람들에게 ‘성인(聖人)’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 칭호를 부여하는 것을 일컫는다.
교황이 순교자의 땅에서 직접 시복 미사를 거행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의 집전은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시복미사 시작은 오전 10시였지만, 새벽부터 발걸음을 재촉한 시민들로 인해 광화문광장은 오전 8시부터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시민들은 성가를 부르면서 미사를 기다렸다.
오전 8시20분 안내 방송과 함께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공연을 시작했다. 검정 정장을 입고 등장한 백건우는 광화문을 바라보고 좌측에 마련된 그랜드 피아노로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1811~1886)의 ‘두 개의 전설’ 중 첫 번째 곡인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8분간 연주했다.
리스트가 이탈리아 움브리아 주의 도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 성인이 산책 중 새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일화를 소재로 쓴 곡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본받겠다는 의미에서 스스로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했다. 266명의 교황 중 처음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택했다.
천주교 신자인 백건우(세례명 요셉마리)는 이런 점들을 고려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한 헌정곡으로 이 곡을 고른 것으로 전해졌다.
오전 8시50분께 묵주기도 중 전광판에 교황이 탄 차가 서소문 성지로 진입하는 모습이 나오자 시민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비바 파파”를 외치며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았다.
오전 9시9분께 전광판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한문에서 퍼레이드카인 흰색 카니발 무개차로 갈아타는 모습이 중계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코리아나 호텔 근처에서 잠시 멈춰 서서 어린이의 머리에 입맞춤하자 함성은 더 커졌다. 경호원이 데려 온 아기 머리 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손을 얹자 아이는 울상을 짓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황’했지만, 신자들은 그 모습을 즐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종문화회관을 지나 이순신 동상 앞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차에서 내렸다. 이후 단원고생 인 고 김유민의 아버지 김영오(47)씨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농성 중이다.
김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서신이 담긴 노란 쪽지를 전달하고 교황의 손에 입을 맞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받은 쪽지를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 그를 안아주며 위로했다. 전광판으로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오전 9시54분께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대에 오르고 오전 10시 정각, 시복 예식이 시작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안명옥 주교와 많은 형제 주교들과 신자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시성부의 의견을 들은 다음, 본인의 사도 권위로,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앞으로 복자라 부르고 법으로 정한 장소와 방식에 따라 해마다 5월29일에 그분들의 축일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고 시복 선언을 했다.
음악과 함께 순교복자 124위 전체 초상화가 공개됐다. 김영주(이멜다) 화백이 그린 이 전체 초상화는 순교자들의 피로 신앙을 일으켜 세우는 순교 당시의 바람처럼 ‘새벽빛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 강론에서 “순교자들의 유산은 선의를 지닌 모든 형제자매가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 서로 화합해 일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나라와 온 세계에서 평화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다.
“막대한 부요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들 안에 사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고 강조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71) 추기경은 교황 강론 후 “오늘 시복식은 가톨릭 교우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국민, 나아가 아시아의 많은 형제와 더불어 순교자들이 보여준 보편적 형제애를 나눌 수 있는 화해와 일치의 장이 되리라 믿습니다”고 말했다.
“한국 교회의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와 함께 기쁘게 교황님을 환영하며 인사드립니다. 이렇게 교황님께 인사말을 드리게 돼 매우 영광스럽습니다”고 인사한 염 추기경은 “한국천주교회는 이미 103위 순교 성인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시복식을 통해 124위의 복자들을 더 모시게 됐습니다”고 전했다.
곧바로 성찬 전례가 진행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단을 한 바퀴 돌아 봉헌했다. 평화 예식을 끝으로 교황이 퇴장하면서 시복 미사는 마무리됐다.
미사를 지켜본 시민들은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의 농아인 정종옥(55)씨는 “교황님의 행보가 예수님과 닮아 많은 감동했다. 오늘 이 자리가 인생의 큰 축복이 될 것 같다”며 행복해했다. “농아인들은 소통이 더뎌 사회적으로 소외됐다. 교황님이 세계 가톨릭 농아인들이 한곳에 모인 자리를 마련해 우리에게 힘을 줬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다. “통일돼 남북 가톨릭 농아인들이 함께 미사를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정씨를 수화통역을 한 자원봉사자 권영미(48·장애복지협의회)씨는 “사회적 배려와 나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교황님의 방한을 계기로 차별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개인적으로는 한없이 기쁘고 떨린다. 이런 기회, 다시는 없을 것 같다”고 가슴벅차했다.
지체장애 1급 강동훈(43·영등포장애인복지협의회)씨도 “얼떨떨하다. 교황님이 평화와 화해를 강조하셨는데 하루빨리 남과 북이 하나가 돼 교황님을 다시 뵀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겸손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이 인상 깊다는 시민도 많았다. 대학생 박민수(23)씨는 “낮은 자세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교황님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교황님의 말씀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더욱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교황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평생 가슴속에 남을 것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두 번 다시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왔다.
두 살과 열두 살, 두 딸과 함께 인천에서 온 이정희(38)씨는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 다시는 세월호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황님이 많은 기도를 해줬으면 좋겠다”면서 “교황님이 어린이들을 매우 사랑하시는데,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광화문 광장에는 총 17만5000여명이 몰렸다.
시복 미사를 마친 교황은 이날 오후 충북 음성 꽃동네 ‘희망의 집’과 ‘태아동산’ ‘사랑의 연수원’ ‘사랑의 영성원’ 등에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