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2일 뮤지컬 '위키드 첫 라이선스 공연 제작발표회. 주인공인 두 마녀 '엘파바'와 '글린다' 역으로 뮤지컬스타 옥주현(34)과 정선아(32)가 캐스팅됐다.
두 사람은 이미 2012년 화제가 된 '위키드' 첫 내한공연 당시 이 뮤지컬의 유력한 주인공으로 점쳐졌다. 더욱 화제가 된 건 엘파바와 글린다 역에 함께 캐스팅된 박혜나(32)와 김보경(32)이었다.
김보경은 뮤지컬 '미스 사이공' '레베카' 등으로 이름을 알린 상황이었다. 박혜나는 뮤지컬 마니아 사이에서 정평이 났지만, 대중에게는 다소 낯설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11월 말 개막 후 약 10개월이 지나 종연 한 달을 남긴 현재, 공연제작사 설앤컴퍼니의 기대는 맞아떨어졌다. 박혜나는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뽐내며 인기 반열에 올랐다.
'신데렐라' 탄생기가 아니다. 박혜나는 좋은 배우는 좋은 사람이라는 명제를 새삼 환기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해나가고 있다. "저라는 배우에 대해서 많은 분이 알아주셔서 감사하다"면서 "많은 분 덕분에 좋은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를 통해서 많은 걸 배웠다"고 겸손해 했다.
2006년 소극장 뮤지컬 '미스터 마우스'로 데뷔한 박혜나는 이후 '영웅을 기다리며' '왕세자 실종사건' '심야식당' 등 주로 국산 창작뮤지컬 등으로 입지를 다졌다. '엘파바'를 쉽게 따낸 건 아니다. 전 오디션 참가자가 거쳐야 할 앙상블 오디션부터 시작한 그녀는 4차례에 걸친 오디션 끝에 이 역을 거머쥐었다.
"엘파바는 모든 것이 갖춰지거나 순탄한 역이 아니잖아요. (초록 피부로 인해) 남들보다 힘든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목표를 따라가는 인물이죠. (주변의 혹독한 시선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홀몸으로 싸워나가죠. 그런 부분에 관객들이 공감하신 것 같아요. 현실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데 혼자 힘으로 그런 걸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 많으니까요. 제 삶 자체에도 그런 지점이 묻어나죠. 그래서 엘파바를 하면서 많이 치유됐어요. 힘이 났고요. 관객분들도 그런 지점에서 많이 공감을 해주신 것 같아요." 박혜나는 그간 피해의식이 많았다. 엘파바의 그러나 거룩한 용기에 감응됐고 그 역시 치유로 작용했다.
공연마다 초록색 피부로 변장을 해야 하다 보니 피부가 초록빛으로 감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지 겉으로 감도는 초록빛에 민감하지는 않다. 대신 "예전에는 초록을 떠올리면 싱그러움이 생각났는데 이제는 엘파바처럼 복합적이고 함축적으로 다양한 심상이 떠오른다"고 내재한 의미에 비중을 뒀다.
'위키드'의 하이라이트 곡으로 1막에서 엘파바가 주변의 압력을 뚫고 솟아오르면서 부르는 '디파잉 그래비티'는 여전히 설렌다. 고음의 곡이어서 "목소리가 매번 나올지 긴장된다"고 웃었다. 이와 함께 "무대 공연은 항상 그날 시작하고 없어지는 장르"라면서 "똑같은 공연이더라도 매번 다르고 공연할 때마다 깨닫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혹자가 무대 장르에 대해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 짚었는데 박혜나는 이를 온몸으로 이해하고 있다.
박혜나를 또 대중에 알린 건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이다. 국내에서 누적 관객 1000만명을 넘긴 이 작품의 한국판 더빙판에서 엘사 역을 맡아 어린이 팬들까지 아우르게 됐다. 역시 엘파바와 엘사를 맡은 미국 브로드웨이 스타 이디나 멘젤(43)과 같은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파리의 연인' 문유나, '왕세자 실종사건'의 중전, '심야식당'의 스트립걸, '위키드'의 엘파바, 그리고 엘사까지…, 박혜나는 자규품 속에서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큰 상처를 간직한 인물들을 연기해왔다.
"그래서 엘파바가 더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앞에서 연기했던 인물들 역시 모두 '센' 캐릭터였는데 그들의 상처를 이해하면서 보는 눈이 조금 더 넓어졌죠. 무대에서 매번 새 캐릭터를 맡을 때마다 큰 인생공부를 하게 돼요. 그로 인해 더 겸손해지죠. 엘파바는 그런 부분이 절정에 달한 캐릭터예요. 제게는 정말 큰 의미가 됐죠."
박혜나는 15일 오후 8시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차지연(32), 리사(34) 같은 쟁쟁한 뮤지컬 디바들과 뮤지컬 콘서트 '걸스 나이트 아웃(Girls' Night Out)'을 연다. 그녀의 부쩍 늘어난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방증이다.
올해 가장 핫한 뮤지컬배우로 자리매김한 박혜나는 벌써 2015년 최고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이미 차기작이 줄을 서 있다. 뮤지컬스타 박혜나를 떠올릴 때 항상 따라올 '위키드' 한국 첫 라이선스 공연은 10월5일까지만 무대에 오른다. 잠실 샤롯데씨어터, 설앤컴퍼니. 1577-3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