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임선혜를 여행하는 관객을 위한 안내서…뮤지컬 '팬텀'

'고(古)음악계 한류스타' 소프라노 임선혜(39)와 뮤지컬 '팬텀'의 '크리스틴 다에'. 평행우주 이론이 떠올랐다. 다른 우주에 같은 공간이 존재했다. 

크리스틴은 시골에서 파리로 올라왔다 엉겹결에 오페라 무대에 주인공이 된다. 없던 후원자와 선생도 갑작스레 생긴다. 

임선혜 말을 빌려 "자그마하고 눈밖에 안 보이는 동양 여자애"이던 그녀 역시 지휘자 선생을 만나 1년도 안 걸려서 유럽 무대에 데뷔를 했다. '팬텀' 속 크리스틴처럼 파리 오페라극장 무대에 주역으로 올라 노래부르기도 했다. 

"파리오페라국립발레단과 같이 무대에 올랐었는데 이번 '팬텀'에도 그 발레단이 나온다. 크리스틴 대사 중에 '내가 파리 오페라에?'가 있는데 내가 실제 했던 말이기도 하다. 실제 그 무대에서 오페라 '오르페오'에서 '에우리디체' 역을 맡아 쓰러져 15분 가량 누워 있는 장면에서 샤갈의 천장화를 구석구석 살펴본 적이 있다. 요즘 그 때가 계속 떠오른다." 

7일 오후 광화문에서 만난 임선혜는 내내 눈을 반짝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을 마치고 전날 귀국했음에도 '팬텀'을 이야기하는 내내 설렘이 가득했다. 크리스틴 역으로 뮤지컬 데뷔를 앞두고 있다. 

23세에 벨기에 출신 고음악의 거장 필립 헤레베게에게 발탁된 뒤 유럽을 주 무대로 활동해 왔다. 바흐, 헨델, 모차르트를 주요 레퍼토리로 윌리엄 크리스티 등 고음악계 거장들과 작업하며 세계적인 성악가 반열에 올랐다.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다. 그런 거물이 한국 뮤지컬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클래식계는 깜짝 놀랐다. 

"작년 가을께 페이스북에 도전과 욕심의 차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욕심이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행하는 거고, 도전은 내게 득이 될 지 안될 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용기를 내는 것이라고. 나는 도전으로 간다고 적었다. 그 때가 '팬텀'을 하기로 결심을 했을 때다.(웃음)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출연하게 됐지만 "과연 내가 해도 되는 일인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고민하다가 (출연하기까지) 오래 걸렸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최근 유럽에서 바흐를 불렀는데 "다르게 느껴졌다"고 했다. 뮤지컬 '팬텀'을 연습한 뒤 유럽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뮤지컬 참 일사분란하더라. 오페라와 다른 차원이었다. 특히 예술이 대중성을 가졌을 때와 안 가졌을 때에 대해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대중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의 벽이 없어지는 것은 (클래식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부러운 일이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은 깊이 어루만지는 힘이 느껴진다. 지리적으로는 유럽과 한국을 오가고 시대적으로는 바로크 음악과 살아 있는 작곡가의 곡을 부르다보니 시공간을 이동하는 듯한 이색적인 기분이 들더라.(웃음)"

한국 초연인 이번 '팬텀'의 연출가로 '모차르트!' '엘리자벳'으로 유명한 로버트 요한슨이 직접 몇 차례에 걸쳐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 등 임선혜를 섭외하기 위해 2년간 공들였다. 그는 "임선혜는 놀랍도록 유연하고 섬세한 테크닉과 뛰어난 통찰력을 가졌다"면서 "극 중 오페라 가수인 크리스틴 다에의 다양한 오페라 레퍼토리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서 적격"이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 뮤지컬을 꿈 꾸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근데 (클래식음악으로) 데뷔를 하면서 접힌 꿈이었다. 어릴 때 꿈이던 아나운서처럼 말이다.(웃음) 저를 이 작품에 섭외한 것이 신기한 일이다."

벨기에 출신의 거장 지휘자 르네 야콥스가 임선혜와 함께 일하면서 높게 평가한 부분 중 하나가 연기력. 임선혜는 정작 "한국에서 한국말로 노래하고 대사를 할 때 유럽에서처럼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올지 걱정된다. 외국말로 노래하고 대사하고 감동을 주는 것은 어느 정도 성취감이 들었다. 자국에서 우리말로 하지 못한다면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지. 한국말로 과연 무대 언어를 살릴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거기에 대해 물음표를 찍고 왔는데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자신감을 얻고 있다."

성악가는 마이크를 쓰지 않고 극장을 울리도록 발성과 호흡을 훈련 받는데 뮤지컬에서는 현대 전자 음향으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것도 다른 점이다. 

"가진 소리로만 공간을 채우는 훈련을 받는 사람이다. 그런 창법을 뮤지컬에서도 똑같이 하겠지만 그 소리를 마이크로 전달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 마이크 효과를 영리하게 사용하는 것이 관건이겠지. 성량이나 소리의 공명에 덜 신경을 쓰니 마이크가 가사를 잘 전달하는 장점이 있더라."

임선혜처럼 발레리나 황혜민이 뮤지컬에 데뷔하는 등 '팬텀'은 다양한 영역의 아티스트들을 한데 모으고 있기도 하다. "노래하는 사람은 춤 추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 있다. 그런데 춤 추시는 분들도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이 있다고 하더라. 그러다 보니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웃음)

EMK뮤지컬컴퍼니(대표 엄홍현)가 제작하는 '팬텀'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세계 4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으로 유명한 가스통 르루의 원작(1910)을 또 다르게 해석한 뮤지컬이다. 가면 뒤에 흉측한 기형의 얼굴을 숨긴 채 '오페라의 유령'이라 불리며 극장 지하에 숨어 사는 비극적 운명의 '팬텀', 아름다운 외모와 목소리로 팬텀의 마음을 사로잡는 크리스틴 등 설앤컴퍼니(대표 설도윤) 제작으로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오페라의 유령'과 등장인물이 같다.

하지만 극작가 아서 코핏·작곡가 모리 예스톤이 협업한 작품으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과는 넘버와 이야기 전개 등이 완전히 다르다. 특히 팬텀의 인간적인 면모에 초점을 맞춘다. 

크리스틴도 차별화된다. '오페라의 유령'의 크리스틴이 청순형이라면 '팬텀'의 크리스틴은 당돌하다. '오페라의 유령' 2001년 한국판 초연의 크리스틴이 김소현(39), '팬텀'의 2015년 한국 초연의 크리스틴이 임선혜라는 점과도 겹쳐진다. 그녀들의 본래 성격과 색깔이 자연스레 묻어나기 때문이다. 더 재미있는 건 임선혜와 김소현이 서울대 성악과 94학번 동기로 라이벌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우연이다. 그 친구는 성악을 잘 했다. 나는 가요를 잘 했고. 근데 길이 반대로 됐다.(웃음) 김소현 씨는 웨버의 크리스틴 이미지에 정말 잘 맞는다. 순진하고 사랑스런 역이다. '팬텀'의 크리스틴은 사랑스러운 것은 똑같지만 좀 더 당돌한 느낌이다. 새로 나온 악보를 직접 노래를 부르면서 파는 역이다. 두 작품이 그리는 크리스틴은 다르다."

벌써 데뷔 16년을 맞았는데 이전 작품들은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다. "지금 하고 있는 작품으로 기억을 꽉 채우기 때문"이라고 웃었다.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지금(하는 작품)이다. 특히 리허설이 공연보다 더 재미있다. 호기심이 많고 사람을 좋아해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표현을 끌어낼 수 있을까 같이 고민하고 의견을 내는 게 그렇게 좋더라. 계속 운 좋게 좋은 작품들을 만난 이유도 있다. 리허설이 재미있어야 인생 자체가 즐겁다.(웃음)

앞으로 "뮤지컬이기 때문에 또 뮤지컬에 출연하거나 뮤지컬에 더 출연하고 싶다고 밝히는 것은 이른 것 같다"고 고민했다. "물론 레너드 번스타인의 클래식 작품에는 출연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재미있는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거다. 관객들이 제 노래를 들으시고 성악가라서 좋다고 생각하시기 보다 그냥 잘한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성악, 대중가요, 뮤지컬이 아니라 그저 잘하면 통하는 거라 믿는다. 팬텀 중에 류정한 씨와 카이 씨는 성악 전공자이신데 박효신 씨가 가장 궁금했다. 근데 같이 연습하다보니 가요 창법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잘하니 그저 잘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팬텀'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만들어주고 있다고 눈을 반짝였다. "어느 한 물 속에서만 헤엄치고 있다가 지금 그 물가에 앉는 있는 기분이다. 다시 한번 그 속에서 헤엄칠 때는 더 잘 할 수 있을듯 하다.(웃음)" 임선혜라는 우주를 여행하고 싶은 관객에게 '팬텀'은 제격이겠다. 임선혜와 크리스틴이라는 평행 우주가 그 안에 있다. 

'팬텀' 28일부터 7월26일까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 팬텀 류정한·박효신·카이, 크리스틴 임혜영·김순영, 발레리나 벨라도바 김주원·황혜민·최예원, 젊은 카리에르 윤전일·알렉스. 5만~14만원. EMK뮤지컬컴퍼니. 02-6391-6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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