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과 무대 이야기를 태어날 때부터 쭉 써본 게 처음이다. 무엇인가 비밀의 문을 연 것 같은 쑥스러움이 있다."
2년 동안 뜸을 들인 자서전 '벽속의 요정' 뚜껑을 연 김성녀(65)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13일 오전 안국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배우로서 살아온 과정의 여러 가지 파편들이 담겼다"고 소개했다.
책 제목은 김성녀의 대표작인 동명 모노드라마 연극에서 따왔다. 김성녀의 1인32역 연기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5세 아이부터 사춘기 소녀, 엄마, 남편, 경찰관, 영감, 목사 등으로 변신하며 50여 년의 세월을 능청스럽게 넘나든다.
"그 파편이 제 '벽속의 요정'에 32역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인생도 정리하다보니까 정말 다양한 삶을 열심히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32개의 역할처럼 제 내 삶도 32가지 역할을 살지 않았나 생각할 정도로 다양했다. 그래서 책이 좀 두껍다.(웃음)"
다섯 살에 유랑극단의 천막극장에서 데뷔한 김성녀는 지난 40여 년간 연극, 뮤지컬, 창극, 영화, 마당놀이, TV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했다. '천의 얼굴' '마당놀이의 여왕' '벽 속의 요정' 등의 수식어가 따르는 이유다.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 남편인 손진책 국립극단 전 예술감독과 함께 만든 극단 '미추' 대표 등도 역임했다. 책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오롯이 실렸다.
"일단 내년 학교도 정년 퇴직이고 하니까 한번 정리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실버시대의 삶을 열어보는 배우로서의 입장을 마무리하고 정리한다고 할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인터뷰는 이 책이 대신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웃음). 앞으로 인터뷰는 2015년 5월 이후의 삶을 인터뷰 해야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면 "끊임없이 새로운 문을 열고 나갔다"고 회상했다. "어디 한 군데 안주하지 않았다. 가야금 배우다가 연극이란 문을 열게 됐고 연극하면서 마당놀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남편과 함께 만들었다. 공부를 뒤늦게 하다 보니 대학교수라는 직함이 주어졌고. 이런 식으로 가르치다보니까 또 다시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라는 문이 열렸다. 같은 일인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문을 열면서 왔다. 도전하는 삶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로서 섰을 때 제일 자신답다고 생각안 김성녀는 손진책 전 예술감독과 자신이 함께 일궈낸 '마당놀이'가 자식 같아 가장 애정이 간다고 했다. "우리 후배들이 좀 대를 이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동안 한국적인 뮤지컬이 남앞에서 대접받기 힘들었으니. 30년 농사를 지어 우리 1세대가 끝나고 2세대가 문을 열었는데, 좋은 스태프와 배우들이 계속 이어갔으면 한다."
1979년 브로드웨이 오페라인 '에비타'는 무대에서 자유를 누리기 어려웠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 김성녀가 '에바 페론', 가수 조영남이 '체 게바라'를 맡았다. 하지만 당시 당국이 뒤늦게 쿠바 공산혁명의 주역인 체 게바라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공연은 1주일도 안 돼 막을 내렸다.
"무대에서 자유가 어떤 면에서는 어렵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놀이 할 때도 굉장히 어려웠지. 손진책 감독이 마당놀이 연출하면서 하고 싶은 얘기를 웃음 속에 넣었다. 풍자와 해학이지. 하고 싶은 얘기들을 못하게 하는 시대에 무대에 녹여냈던 노하우들이 있다. 그래서 작품이 자유롭게 만들어지면 공연예술이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유롭게 돼가고 있지만 조금 더 꽃이 폈으면 하는 마음이다." 284쪽, 1만3000원, 문학세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