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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사회를 향한 위엄있는 응시…'소수의견'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 13구역 6블럭, 뉴타운 재개발을 위한 철거 현장. 철거민과 진압작전을 시도하는 경찰이 충돌한다. 작전 중 두 사람이 사망한다. 철거민 박재호의 아들 박신우와 의경 김회택. 박재호는 김회택을 살해한 혐의로, 이 작전의 한축을 담당한 철거용역 김수만은 박신우 살해 혐의로 각각 체포된다. 국선변호인 윤진원은 우연히 박재호의 변론을 맞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검찰이 사건송치자료를 열람하지 못하게 한다.

영화 '소수의견'(감독 김성제)은 근래 보기 드문 묵직한 법정드라마다. 법정 다툼을 다룬 한국영화는 대개 스릴러 장르와 접목됐다. 하정우·장혁이 주연한 '의뢰인'은 가장 최근 사례다. 이런 영화에서 중요한 건 사건의 진위이고, 대개 재판은 사건의 진실을 더 능숙하게 드러내는 일종의 도구였다. '소수의견'은 법정 다툼 자체를 중심축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 공방에 얽혀있는, 각자의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의 민낯을 가지쳐 나간다.

영화는 법정물의 두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검사와 변호사의 논리 싸움에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다. 초점은 사건을 마주한 인간에 맞춰져 있다. 인간들의 행동양식은 결국 그들이 사는 세계의 모습. 김성제 감독은 사건을 설명하고, 풀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발생한 사건을 간단히 스케치한 뒤 그 뒤의 상황을 건조하고 차분하게, 그들의 세계 혹은 우리의 세계를 노려본다. 영화의 무게감은 여기서 생겨난다. 사회 풍자 영화로 이 작품을 설명한다면, 그것은 위엄 서린 풍자다.

후반부 단 한 차례의 플래시백을 제외하고, '소수의견'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된다.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전진하며 인물들을 관찰하는 카메라는 인간을 섣불리 판단(판결)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검찰을 제외한(이는 검찰 권력에 대한 불신을 의미하는 듯하다) 변호사, 판사, 기자, 용역업체직원 심지어 가해자와 피해자까지 누구도 단순히 선한 인간, 악한 인간은 없다. 박재호의 변호를 맡는 윤진원조차 공명심으로 일을 맡았고, 그를 돕는 장대석은 결국 증언을 돈으로 산다.

'소수의견'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흥미로운 건 그것이 재판의 긴장감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재판의 양상은 검사와 변호사의 특별한 개인기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유효한 증거를 모으는 사람들이고, 그 증거는 결국 인간에게서 나온다. 그 증거를 가진 사람들은 또 언제나 선하거나 언제나 악하지 않아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재판의 유불리는 언제라도 변할 가능성이 있다.

김성제 감독의 연출력은 다양한 인간의 서로 다른 욕망의 발산을 반복해서 재판으로 수렴시키는 데 성공하는 지점에서 돋보인다. 다시 말해 이들 모두의 이야기는 너저분하게 나열돼 있지 않고, 하나의 사건에서 파생한 어쩌면 하나일지 모르는 결과로 보여진다. 이는 유일한 플래시백 장면과 결합해 철거현장에서의 사건까지도 이 모든 사단의 결과임을 암시한다. 부패한 검찰 권력 또한 결과다. 검사 홍재덕은 윤진원에게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야. 국가를 위해 내가 알아서 하는 거지. 넌 국가를 위해 뭘 했냐"라고 묻는다.

이 밀도 높은 드라마에 숨통을 터주는 건 역시 유해진의 연기다. 유해진은 타고난 대사 리듬감과 튀지 않는 유머 감각으로 너무 진지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는 이런 종류의 연기에서 그가 얼마나 뛰어난 연기자인지 보여준다. 또 한 명, 눈에 띄는 배우는 판사 역할을 맡은 권해효다. 법정물에서 판사는 대개 가만히 앉아 있는 역할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권해효의 판사는 법의 논리로 상황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판단하는 직업인으로서 카리스마를 완벽한 발성으로 표현하며 극의 리얼리티를 높인다. 윤계상, 김의성, 김옥빈 등도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물론 단점도 있다. '소수의견'은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에피소드, 인물의 등장과 퇴장을 너무 극적으로 그린다. 러닝타임을 고려해 앞뒤 상황 설명을 삭제한 것으로 보이는 이 부분은 전체 영화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인물을 상징적으로 설명하는 어떤 도구는 조금 유치하게 보이기도 한다.

극 후반부, 법정에 선 두 아버지가 운다. 영화 '소수의견'에서 가장 뜨거운 장면이다. 이 재판은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기 위해 잘잘못을 가리려는 게 아니다. 결국 두 아들이,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국가도, 권력도, 승소도,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손해배상청구금액 100원의 의미는 영문도 모른 채 죽은 사람, 그들을 잃은 사람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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