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정국혼란의 직격탄을 맞은 재계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에도 상당수 기업들은 내년도 사업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해 정상 경영에 큰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새해가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기업들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 대내외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으로 경영전략 마련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과 정부가 적극 협력해 정국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국정 정상화를 적극 도모하는 한편 기업들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적극 나서줄 것을 재계는 기대하고 있다.
13일 익명을 요구한 재계 고위관계자는 "탄핵안이 가결됐지만 불확실성은 그대로다. 큰 산을 넘겼다고는 하지만 헌재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모르고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여야 주도권 싸움은 치열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국혼란 외에도 트럼프발 리스크, 미국 기준금리 인상, 이탈리아 EU 탈퇴, 특검 등 대내외적인 불확실성과 경영환경 악화는 여전히 산재해 있다"며 "매년 힘들다 힘들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막막한 적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최근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관련 청문회에서 대기업 총수들이 출석한데 대해 조만간 본격화될 특검 수사를 앞두고 각 그룹들이 준비에 전념하는 탓에 경영계획 수립에 큰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는 이런 여건으로 대내외 경영환경 리스크가 어느때보다 커지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수출주도의 기업구조속에서 정국 혼란에다 대외 여건에서도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탓에 내년도 수출과 성장에 막대한 차질이 예상되고 있어서다.
실제 이날 기준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내년도 경영계획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거나 수립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면한 현안을 극복하는데 주력을 쏟고 있는 와중에 사업재편 및 경영전략 마련까지는 아직 준비를 못한 모양새다.
일부 대기업은 최순실씨 지원 사태와 연루된 탓에 총수가 청문회에 소환되기도 했고, 초읽기에 들어간 특검으로 인해 이에 대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맏형 삼성 역시 사장단 인사를 비롯해 연말 경영일정을 줄줄이 연기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매년 12월 중하순께 용인 인재개발원에서 개최하는 사장단 워크숍의 일정을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반기마다 한 번씩 진행되는 삼성전자 글로벌 전략회의는 오는 19일부터 21일까지 기존 일정대로 시행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관계자는 "글로벌 전략회의가 치러진 후에 나머지 계열사도 경영계획이 어느 정도 수립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LG는 지난 1일 정기 임원인사를 실시하는 등 정상 경영 행보를 적극 보이고 있으나 정국 혼란이 확대될 경우 그룹 전반에 미칠 파장에 대해 예의주시하는 등 긴장하는 모습이다.
LG그룹 관계자는 "프리미엄 가전과 올레드(OLED), 고부가 기초소재 등 프리미엄 제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수익성을 제고할 것"이라며 "친환경 자동차 부품과 에너지솔루션 등 신성장사업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본격적인 성과를 창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르면 다음주에 해외법인장회의를 열고 판매 목표 등을 결정한 뒤 내년 신년사에서 경영계획 등에 대해 밝힐 예정이다.
한화그룹은 내달 중순, 한진그룹은 이번 주말 정도에 경영전략을 내놓는다는 방침아래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두산그룹과 GS그룹은 각 계열사별로 전략을 수립 중이며, 완료 시점은 아직 미정이다.
포스코 측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데 방점을 두고 경영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며 "아직 이에 관해서는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KT그룹은 내년도 경영계획에 대한 부서별 업무 보고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만간 신년 계획 최종안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KT의 신년 경영계획안이 꾸려지는 대로 연말 정기 임원인사도 단행될 전망이다. 통상적으로 KT는 12월 첫째 주에 연말 임원인사를 실시했으나 올해는 1~2주가량 늦어지고 있다.
다른 그룹사처럼 KT도 정치권 파문으로 조직 개편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는 올해 KT 임원인사가 소폭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SK그룹은 '변화와 혁신'이라는 인식 공유를 기반으로 각 관계사 별로 업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사업구조 검토 및 진행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는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는 물론 정치권도 정국 안정을 적극 도모함으로써 기업들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적극 나서줘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탄핵안이 가결된만큼 최종결정은 헌재에 맡기고 정치권과 정부는 최대한 평정을 찾아 국정 정상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며 "정국 혼란이 계속되면 기업들의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져 경제적 피해가 확대되고 결국 더 큰 국가적 타격이 야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