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검팀이 오는 21일로 예정된 현판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재계의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지고 있다.
19일 익명을 요구한 재계 고위관계자는 "재계 총수의 청문회 참석과 검찰 소환 조사가 서막이라면 특검은 본격적으로 판이 열리는 것을 의미한다"며 긴장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조사를 받을 기업들은 이미 나름대로 준비를 마쳤겠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예측하지 못한 일이 터질지 몰라 노심초사"라고 언급했다.
앞서 진행됐던 청문회나 검찰 조사는 이번 특검의 예고편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특검의 수사 방향이나 폭에 대해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
이번 일에 연루된 또 다른 인사가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있고, 조사 대상에 있는 인사가 수사 과정에서 폭탄발언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검팀은 대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770억 여원이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의식한 대가성 있는 '뇌물'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이번 특검팀의 대기업 수사 성패가 삼성그룹의 '방패'를 뚫느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고 주시하는 모습이다.
현판식은 이틀 뒤에 열리지만 특검팀은 이미 수사에 들어간 상태다. 특검팀은 전날 박상진 대외협력부문 삼성전자 사장 겸 대한승마협회 회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비공개 조사하면서 사실상 수사에 착수했다.
박 사장은 최순실씨 모녀 특혜 지원과 관련해 삼성과 청와대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우선 특검의 화력은 대기업과 박 대통령 사이의 제3자 뇌물 혐의를 밝히는 데 집중될 전망이다.
이와관련,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은 출국금지 조치됐다. 이들은 지난해 7월과 올해 2~3월 박 대통령과 독대한 대기업 총수들 중 일부다.
특검의 매서운 칼날이 재계를 노리고 있다는 점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나면서 재계는 이미 차질을 빚고 있는 인사, 내년 사업계획 수립 문제가 더 혼란을 겪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번 특검과 관련해 주요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이는 삼성은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는 모양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특히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힘들다"며 말을 아꼈다.
삼성은 매년 12월 중하순께 용인 인재개발원에서 개최하는 사장단 워크숍의 일정도 잡지 못하는 등 사장단 인사를 비롯한 연말 경영일정을 줄줄이 연기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출국금지로 삼성이 올 들어 보이고 있는 공격적인 M&A(인수합병) 행보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전망이다.
SK그룹과 KT도 특검조사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며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SK 관계자는 "특별한 입장은 없다.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 청문회에서 우리 그룹 의혹은 소명됐다고 본다"며 "재계 전반에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이 늘어났다고는 생각한다"고 전했다 .
현재 두 그룹사는 지난해보다 정기 인사가 1~2주 늦어지고 있다. 각사는 인사가 지연되는 여러 추측을 일축하고 있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경영계획수립의 악재로 작용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KT는 내년 초 황창규 회장의 연임 여부 이슈까지 걸려있어 고민이 깊다.
KT 관계자는 "우리 그룹의 경우 인사 시기는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다"며 "임원 인사는 연내 정상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연말 일정을 대체로 소화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특검수사 공식개시일이 다가오자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15일부터 해외법인장 회의를 사실상 시작하며 내년도 판매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계열사 임직원에 대한 인사는 26일 전후로 마무리 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일단 검찰 조사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됐고, 앞서 국정조사 청문회도 받은 상황이기에 특검 시작이 큰 의미가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며 "김승연 회장의 경우 출국금지를 받은 상황도 아니기에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내년도 사업계획 논의 등 연말 일정을 예정대로 소화하려 하지만, 향후 특검 수사가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 장담할 수 없다"며 "현재 대내외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경영계획 수립에 집중해야 하는데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