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박가분 지음 / 자음과모음 펴냄)
가라타니 고진은 1980년대에 포스트모던 비평가에서 세속적 비평가로 전회했고, 1990년대에 ‘트랜스 크리틱’을 출간함으로써 사상적으로 전회했다.
‘트랜스 크리틱’의 성취는 1990년대 이전에 가라타니가 주목한 코기토(고유명으로서의 ‘이 나’)의 기획이 공동체 바깥의 외부적 실존으로 나아가도록 추동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이론화했다는 데 있다.
그런데 ‘트랜스 크리틱’을 보면 가라타니의 방법이 ‘정말로 트랜스 크리틱’한 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박가분은 이것들을 비판한다.
첫째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이 지니는 현실 비판적 의의를 퇴색한 점, 둘째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노동문제들을 이론적으로 주변화한 것, 또 마르크스가 분석하고자 한 자본주의의 구체적 동역학을 ‘반복강박’과 같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규정으로 환원했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특정한 생산관계 또는 생산양식이 아니라 특정한 교환양식으로 바라보며 잉여가치와 착취를 유통과정에서만 설명한다.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은 가라타니 고진을 외적인 방식으로 혹은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다만, 가라타니가 스스로 충실하게 따른다는 마르크스의 개념과 체계에 정면으로 반하는 지점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