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양대 도서전으로 꼽히는 2014 런던도서전이 3일간의 일정을 끝으로 10일(이하 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런던도서전은 1971년 출발, 독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과 함께 저작권 거래를 위한 비즈니스 중심 도서전으로 자리 잡았다. 매년 100개국 이상에서 약 2만5000명의 출판인, 서적상, 출판 에이전트, 사서와 영상산업 관계자들이 참가해 왔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진룡)의 지원을 받은 대한출판문화협회는 한국문학번역원, 주영한국문화원, 한국예술위원회 등과 협력해 런던도서전에 516㎡ 규모의 마켓 포커스관을 개설해 세계 출판 시장과 만났다.
도서전 기간 한국을 중심에 둔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마켓포커스에 참가하는 전자출판 회사·한국 웹툰 등이 소개되고 한국출판계와 해외 출판인의 교류 행사 등이 열렸다. 한국출판시장·한국아동출판·한국전자출판·한국 번역프로그램 등 다양한 출판전문 세미나도 개최됐다.
소설가 황석영·이문열·이승우·신경숙·김인숙·김영하·한강, 시인 김혜순, 아동문학가 황선미, 웹툰작가 윤태호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10인도 런던도서전에 함께했다. 이들은 다양한 문화·문학행사 등을 통해 세계의 독자를 만났다.
고영수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은 "영국 측의 우호적인 협조 속에 한국의 작가와 작품이 집중적으로 조명받은 뜻깊은 자리였다. 유럽 내 한국출판을 알린 중요 계기가 됐다는데 만족한다"며 "활성화된 국내 작가와 작품에 대한 관심이 지속할 수 있도록 협회차원에서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선미·이정명 등 한국작가 영국에서 주목
'마당을 나온 암탉'은 번역, 출간돼 지난달 30일 영국 대형 서점 포일스의 런던 워털루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주목받았다.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영국에서 소수 언어권의 작품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를 배경으로 '마당을 나온 암탉'의 황선미 작가는 런던도서전 둘째 날 '오늘의 작가'에 선정,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 대중과 만났다. 한국관을 방문한 웨일스 공 찰스의 후처 콘월 공작부인은 황 작가에게 "작품을 읽어보고 손자에게 읽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황 작가의 작품들은 런던 시내 주요서점의 주요위치에 진열, 영국 독자와 만났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의 이정명 작가는 '별을 스치는 바람'의 영국판 '디 인베스티게이션(The Investigation)' 출간을 기념해 영국의 유서 깊은 서점인 '골드스보로'에서 사인회를 열었다. 국내 작가로서는 최초다.
'별을 스치는 바람'은 시인 윤동주의 시를 불태운 일본인 검열관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파헤친 팩션이다. 국내에서 15만 부가 팔리고 한국 최초로 출간 전 5개국에 판권이 수출됐다. 영국에서는 영국 최대 문학출판사 맥밀런과 계약했다. 맥밀런의 지원 속에 작품은 서점의 주요위치에 배치, 독자를 만난다.
◇전자출판 시장 후끈
영국은 2012년 기준, 전년도 대비 전자책 시장이 66%가 성장할 정도로 전자출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시장규모는 4억1100만 파운드로 전체 출판시장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이를 반영,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원장 이재호)은 도서전 기간 한국전자출판관을 운영했다. 오렌지디지트코리아·탭온북스·아이이펍·북잼·북앤북·와이팩토리·아이포트폴리오 등의 회사가 참가, 독서환경에 적합한 유비쿼터스 사업모델을 제안했다.
도서전 개막에 앞서 열린 디지털마인드 콘퍼런스에서는 전자책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이들이 연사로 나서 각국 시장에 대해 설명하고 전자출판의 나아갈 길을 논의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온라인 북스토어 예스24의 김석환 상무가 참석, '출판의 미래는 e북에 있다'를 주제로 의견을 펼쳤다.
◇국내 대표 작가 10인, 영국에서 소설을 말하다
황석영·신경숙·김인숙·김영하 등 국내를 대표하는 작가 10인은 런던도서전을 방문, 세계와 만났다. 이들은 도서전 기간 열린 다양한 문화행사에 참석, '소설의 역할' '집필의 원동력' 등 쉽지 않은 질문에 진지한 답을 이었다. 한국에서는 100만 부 이상의 판매량을 올리거나 주요 문학상을 쓸어담은 이들이지만, 영국에서는 '소개'되는 '탓' 혹은 '덕'이다.
황석영은 "젊었을 때는 역사나 사회의 현실을 바꾼다거나 더 직접 행동하는 식으로 글을 썼다면 나이가 들면서 조금 변했다. 이를테면 의사, 신부, 목사, 선생 등 사람과의 관계와 관련해 직접 일하는 사람들처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달라진 생각을 전했다.
현실 참여적인 소설을 집필해 온 김인숙도 변했다. "30년 전에는 소설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심지어 '그렇게 하는 일에 복무해야 한다'는 표현을 썼던 사람이다. 지금은 타인들에 대한 관심으로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나에 대한 관심으로 소설을 쓴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30년이 길다."
신경숙은 "작품을 쓸 때 누군가가 내 작품을 읽으면서 마음이 흔들리기를 바란다. 내 작품을 읽기 전과 후에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 달라져 있으면 작가로서 행복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영하는 "소설이 현실에 큰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굳이 역할이 있다면 사람들이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지금 현재의 문제들을 내 방식으로 전달하는 거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페이스트리처럼 싸서 주는 거다. 이것도 잘 되는 거 같지는 않다."
작가들은 국내 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우수 번역자들의 양성, 국가 이미지 제고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이문열은 "1995년부터 영국 시장을 두드려왔는데 별 진전이 없었다. 글을 신통치 않게 썼는지 모르지만, 번역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출판되는 책이 프랑스와 독일이 10권이라면 영미권은 2권밖에 안 될 정도로 출판물 자체가 드물다. 런던도서전이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신경숙도 "미국은 외국 책 출판이 3%라고 한다. 거기서 문학이 차지하는 건 또 얼마나 작은가. 이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경우"라며 "번역도 중요한 문제지만 나라에 대한 호감도도 중요한 거 같다. 한국이라고 한다면 궁금하고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지금보다 좋은 이미지가 많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강도 "훌륭한 번역가가 모국어로 쓴 작품을 해당 언어로 잘 번역해 내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이 누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런던도서전은 출판오디오북·TV·영화·디지털 채널 등 다양한 콘텐츠의 판권과 유통이 이뤄지는 국제 마켓으로 매년 봄 개최된다. 2014 런던도서전으로 43회를 맞았다.
지난해 주빈국인 터키에 이어 올해는 한국이 마켓 포커스 국가로 선정됐다. 주빈국 프로그램은 런던도서전에서 해당 국가의 출판산업 경향을 자세히 검토하고 문화 사회적 교류의 기회를 확대하고자 2004년부터 시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