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말기 도쿄의 오마리 수용소 등 일본 내 포로수용소에서 가장 혹독한 시기를 보냈던 미군 포로 출신의 90대 미국 노인 7명이 5년 전 시작된 일본 정부의 미군 포로 초청 사업의 일환으로 도쿄를 방문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미군의 B-29기 폭격으로 도쿄가 폐허가 되다시피 했을 때 도쿄 오마리 포로수용소에 있던 미군들은 혹독한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빌 산체스(96)는 다른 두 명과 함께 옛 포로수용소 자리에 세워진 위령탑 겸 자비의 여신상 헤이와지마 간논(平和島觀音)을 보러 온 곳에서, 자기들은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말했다.
오마리 수용소의 다른 포로들과 함께 부두의 하역 작업에 동원되었기 때문에 먹을 것을 훔치거나 얻어올 기회가 많았다는 것이다. 수용소는 지금은 평화의 섬(헤이와지마)으로 불리는 도쿄만의 작은 섬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컸고 미국과 영국 포로들이 수용돼 있었다.
오럴 니콜스(93)는 태평양의 웨이크섬에서 건설 공사를 하던 중 섬이 1941년 일본에 점령당하면서 5000명이 한꺼번에 포로가 되었다. 전쟁 막바지에 상하이 수용소를 거쳐 다시 일본 북부의 노천 철광으로 끌려갔다가 석방되었다.
잭 슈와르츠(99)는 캘리포니아 공대 출신으로 1940년 해군 민간인 공병부대에 차출되었다가 괌에서 포로가 되었고 일본 시코쿠섬의 '시범용 수용소'에서 여러 해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4년 내내 제대로 된 식사를 한 번도 못해봤다"며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사흘째에야 겨우 밥 한 끼를 먹었다고 도쿄의 템플대에서 열린 강연에서 당시의 상황을 회고했다.
이들 노인들은 거의 70년만에 찾은 도쿄의 발전상에 모두 놀라워 했고 특히 비데기가 설치된 양변기의 따뜻한 좌석에 감탄했다.
2차대전 동안 일본은 약 3만 명의 연합군 포로들을 일본, 중국, 아시아 지역에 있는 10여 군데 포로수용소에 감금하고 있었다고 일본의 전쟁포로연구 네트워크는 밝혔다.
노인들은 당시의 잔인하고 비참한 대접이 시대 상황이었다는 걸 이해한다면서 일본군 간수 중에는 음식을 훔치다 들켜도 눈감아 주거나 도시락을 갖다 주는 등 친절한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