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당시 남북한 외교관의 미국 텔레비전 생방송 출연이 성사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30일 비밀해제된 1984년 외교문서에 따르면 미국 방송사 NBC 소속 프로듀서 겸 기자인 빌 브라운씨는 1984년 6월18일 주(駐)유엔 한국대사관을 방문해 "7월말 생방송되는 투데이 뉴스쇼에 남북한 주유엔 대사를 함께 초청하는 것을 추진 중"이라면서 김경원 당시 주유엔 한국 대사에게 참여를 제의했다.
1952년 한국전쟁 중 해병대로 북한에 파견됐던 브라운씨는 김경원 대사와 한시해 주유엔 북한대사, 리처드 스나이더 전 주한 미국대사 등을 생방송에 출연시키겠다고 밝혔다.
브라운씨는 그러면서 김경원 대사가 참석을 거부하면 한시해 대사와 스나이더 전 대사만을 초청해 방송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주유엔 한국대사관에 전달했다.
그러자 한국정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외무부는 이번에 공개된 당시 외무부 보고서에는 "(브라운 기자의)구상이 실현되면 아국에 불리한 효과가 날 것으로 예상되므로 동 구상의 추진을 적극 저지해야 한다"는 대응 방침이 적혀 있었다.
외무부는 "브라운 기자가 2차에 걸쳐 방북하는 등 북한과의 관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한시해의 TV출연 용의 표명에서 발단됐으므로 이번 구상은 북괴의 술책"이라고 지적했다.
외무부는 또 "최근 북경에서 3자회담 개최 제의설과 미·북 접촉설 등이 보고되고 있는 상황 하에서 미국의 3대 TV방송 중에 하나인 NBC가 이런 방송을 내보내면 미·북 관계 개선 또는 3자회담에 대한 미국정부의 태도 변화로 오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외무부는 "북한이 이번 성과에 따라 TV 등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며 획책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런 입장에 따라 외무부는 주유엔 대사관과 주미 한국대사관에 '브라운씨와 NBC 본사, 미 국무성과 접촉해 반대 입장을 설명하고 추진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미국 현지 한국외교관들은 이 지시에 따라 미 국무성과 접촉해 "북한은 이번 제의를 통해 랑군 사건(아웅산묘소 폭파암살사건)을 호도하고 대미 직접 접촉을 실현하려는 위장 평화 술책의 일환"이라며 "TV방송 계획은 북한의 위장평화 선전 공세의 계기만을 마련해 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런 공개토론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상호 불신을 조장하고 남북한 간 선전전을 계속하게 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정부가 강경한 입장을 취하자 미국측은 방송계획을 철회했다.
외무부 차관이 방한 중인 스나이더 전 대사를 6월22일 직접 만나 참석하지 말 것을 요청했고 스나이더 전 대사는 "미국 출발 직전 NBC 기자로부터 제의를 받고 만약 한국 대사가 참가한다면 자신도 참가하겠다고 언급했지만 그 후 여러가지를 고려해본 결과 참가치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 셔먼 부차관보와의 통화 시 불참의사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브라운씨도 6월25일 한국정부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측이나 스나이더 대사가 공히 제의를 수락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인사만 출연하는 것은 뉴스가치가 없다"며 "NBC가 북한에게 일방적 선전의 기회를 줄 생각은 없다며 더이상 이 건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외무부는 전했다.